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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an 06. 2024

애매해서 오히려 좋다

나는 애매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나 뾰족해지고 싶었고 명확해지고 싶었다. 자기 확신이 뚜렷해서 순간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확신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애매해서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뚜렷한 색깔은 아니지만 그리고 어딜 가나 가장 무난한 베이지 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나에겐 애매한 재능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들이 제법 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기타, 보컬, 음향이 그렇다. SNS에 올리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사진 및 영상 촬영과 편집도 역시 애매함에 속한다. 요리, 운동, 심지어 글쓰기도 따지고 보면 애매한 재능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조금씩 할 줄 아는 것들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애매한 재능 부자라고 여길 수 있다.


2년 동안 이 애매함이 늘 갈증을 만들었고 무엇 하나라도 예리한 무기로 만들고 싶었다. 물론 이 중에 글쓰기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여전히 애매함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못했기에 답답함은 언제나 마음속에 깔려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상대적으로 잘하는 사람들인 거 아닐까?' 의구심과 괜한 희망이 섞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내 눈에 그들은 전혀 애매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름 퍼스널 브랜딩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애매함이 무기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다. '당신들은 하다못해 당신들만의 분위기라는 것이라도 색깔이 명료하잖아요!'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오히려 내가 애매해서 좋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얼마간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나는 왜 애매한 재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기준은 경제적 수단이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경제적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재능은 다 의미 없는 것들로 생각했다. 그러니 얼마나 스스로 괴로웠을까. 무엇 하나 확실한 재능으로 보이는 게 없었는데.


최근에야 마음속에 선명했던 기준을 지워버렸다. 개인적인 롤모델이 생기면서 뚜렷하지 않아도 충분히 영향력을 나눌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배경색 같은 존재여도 그래서 오래도록 지루하지 않음을, 그리고 뚜렷한 이들이 더 선명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의 애매함이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내가 할 줄 아는 그것들을 통해 소소하게 이곳저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그리 의미 없이 받아들였을까? 살아보니 세상엔 전문가보다 적당히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자주 필요하다. 그리고 적당히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이쪽저쪽 어울릴 수 있어서 삶이 풍요롭다. 그리고 중용한 사실은, 나의 애매함이 어떤 누군가에겐 전문가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애매함은 상대적인 것 아닐까?


누군가 나처럼 애매함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당신이 암초같이 느꼈던 애매함은 당신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천혜의 환경이라고. 그리고 애매함 들은 오히려 다양한 것의 가능성이라고.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중의 한 가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한 가지 색깔을 꾸준히 내다보면 언젠가 세상이 우리를 뾰족하게 볼 테니까.


나 자신을 조금만 더 인정해 주고 믿어주자. 어쩌면 그 많은 애매함은 오히려 내가 나를 인정해 주지 못함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일지도 모르니. 나에게 다정해지자. 부디 우리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사람들이었음을 알아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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