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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an 05. 2024

너저분한 조화로움

사진작가님의 손을 거쳐 카메라에 담긴 서울의 야경은 차가운 생기를 가진 화려함 속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늘 거니는 동네의 야경에서는 너저분함 속의 조화로움만 느껴질 뿐이다. 건물 가득 제멋대로 반짝이는 네온 간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곳. 동네의 상권을 걸어 지나올 때면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시선을 떨군다. '어지럽다'는 생각뿐 그러고는 재빠르게 집으로 향한다.


이것도 그 나름 정돈된 거라고 하지만, 마치 여럿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호객행위라도 하듯 바라볼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끔 마음이 혼란스러울 땐 괜스레 도시 핑계를 대기도 한다. 마치 내 마음속 소란스러움도 내가 지나온 밤거리의 모습처럼 통일감 없이 이 소리 저 소리 외쳐대니.


멀리서 보면 밤하늘로 쏘아 올린 불빛들이 멋진 풍광을 자아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만함으로 다가오는 도시의 밤. 나는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또 나는 이런 산만함마저 무감각해질 만큼 익숙해져 버렸다. 


가끔은 야경이라는 게 하늘을 수놓은, 쏟아져 내릴듯한 별들과 이렇게 밝았나 싶을 달, 그리고 물가에서 서린 달빛이어야 맞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근데 이 또한 내 안에 있는 불균형 때문임을 깨닫는다. 나에겐 늘 도시의 야경만 곁에 있으니 자연 그대로의 야경은 자연스레 결핍된 무언가로 남아있다.


인간이 만든 것들을 폄하하거나 비난할 맘은 없다. 단지 인위적인 것에서 위로받지 못하는 마음 한구석 때문에 괜한 투정을 부려보는 것뿐이다. 아마 반대로 내내 시골에만 살았으면 다른 말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열정이 넘치는 도시의 야경을 찬양하고 있었을지도. 


사람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정 가운데에 서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운데쯤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게 된다. 가운데 어딘가에 있다고 또 다 같지도 않다. 그들마저 서로 상대적이다.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인간 군상의 삶은 네온 간판처럼 보이지 않을까. 제멋대로 그리고 너저분함. 그 와중에 조화를 이루는 그런 모습처럼.


그나마 글 쓰는 시간이 나의 치우침을 돌아보게 만든다. 정돈되지 않은 마음을 들여보게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도시의 야경인지 아니면 한적한 시골의 밤 풍경인지. 글을 쓰며 깨닫는 건 사람 마음을 가다듬어 주는 건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건네받는 따스함도 있지만 오래 지속되고 가장 정성스러운 위로는 글을 쓰는 것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정문에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살아왔지만, 뒷문에는 또 다른 간판들을 걸어 둔 채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모습들을 나열한 제각각의 빛을 내는 간판들. 그 덕에 마음이 늘 어지러웠음을 깨닫는다. 하나씩 불을 끄기 시작하니 이제야 '나'라는 사람이 어떤 빛을 내는 사람인지가 명확해진다.


돌아보니 가장 너저분한 조화로움 속에 있던 건 결국 내 마음이었다. 이젠 하나의 불빛만을 남겨두었다. 앞으로 그 하나가 더 강렬하게 반짝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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