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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Feb 17. 2024

어쩌다 내향인이 되어버린 하루

오랜만의 주말 오프라인 독서 모임. 매주 토요일마다 온라인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독서 모임이 있다. 일주일 중 토요일 오전이 나에겐 가장 피로감이 몰리는 날이다 보니 한 번을 모임에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다. 한 권의 책이 끝나는 마지막 토요일엔 오프라인 모임으로 진행된다. 오늘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했다.


솔직히 오프 모임이 있다는 것도 하루 전에 알았다. 책도 읽지 않았기에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냥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자리에 나갔다. 강남역 부근 카페에는 주말 오전에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우리도 그중 한 팀. 여러 개의 작은 테이블을 붙여 빙 둘러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마다 자신의 삶을 대하는 진지함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로 인해 나의 에너지는 오히려 타들어간 기분이었지만.


살면서 늘 나 자신을 외향형 인간이라 여겼다. 외향형 내향형은 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에너지가 충전되느냐 아니면 빼앗기느냐의 차이로 구분 지어지곤 한다. 그동안 나는 모임 가운데 오히려 활력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기가 빨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MBTI 검사를 해보면 늘 어김없이 외향형으로 나오긴 했지만 외향형과 내향형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나의 에너지가 충전되었던 모임은 5인 이내의 소수이거나 1:1 만남에서였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오늘 모임은 대략 스무 명 남짓의 인원이 모였고, 책도 읽지 않은 상태였으며 하필 또 조금 늦게 도착해서 더욱 저만치 떨어져 앉았다. 심리적으로 먼발치에서.


성장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모임이었던 만큼 서로 오고 가는 대화의 대부분은 자기 계발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 역시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평소에 담고 살았던 질문이 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백지상태로 앉아있다는 기분이었다. 이런 모임이 좋은 건 상대방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것 이상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인데, 오늘은 모든 소리가 나에게서 튕겨져 나가는 듯했다.


아무리 차린 음식이 정갈하고 맛깔나도 체기가 돌아 소화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혓바늘이 돋아 제대로 씹지 못하는 상태라면 결국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오늘 딱 그 짝이었다. 돌아오는 마음이 내내 아쉬웠다. 모처럼만의 모임이었는데. 무엇하나 소화하지 못하다니. 


이런 기분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답답해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역시 가라앉은 마음은 글로 푸는 게 제맛이지'라고 생각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정거장 더 갔음을 뒤늦게 알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살다 보면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또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있는 하루지만 이런 하루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까 되짚어 본다. 그리고 깨닫는 한 가지가 있다면 독서 모임은 최소한 책을 읽고 가야겠다는 것. 당연한 소리를 뭐라도 깨달은 듯 말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그 당연한 걸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독서 모임의 본질은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는 것에 있고, 어떤 강의를 들을땐 그 강의를 토대로 나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적용을 함에 있다. 책을 읽는 것도 그냥 읽는 그 자체로 만족을 느낄 수 있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독서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함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당연한 핵심을 얼마나 많은 시간동은 그냥 흘려보내버렸던가.


그저 현재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어떤 활동에 나가보지만 여전히 그때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나의 행동이 본질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오늘 대화를 나눴던 한 분은 문제를 인지하면 감정적 반응이 일어나기보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골몰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씩 성취감을 쌓아가다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비록 모임에서는 많은 것을 담지 못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뱉은 한 마디가 가슴속에 울림으로 남긴 했으니 영 소득이 없던 건 아니었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위안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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