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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Feb 21. 2024

오늘은 날씨에 졌다

'어라?'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4시가 다 돼버렸다. '분명 오늘 나에게 '시간'이라는 것이 주어졌는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지?' 역시 흐린 날엔 스타벅스에 가는 게 맞았다. 오늘은 아내도 출근하는 날이고 집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잠시 고민하다 집에 있었는데. 나의 착오였음을 오후 4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 편이다. 대충, 간단한 걸로 때우거나 아내가 챙겨줘야 먹는다. 이유는 차리고, 먹고, 정리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끼니를 챙기는 시간이 시간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님을 잘 안다. 밥을 먹으면서 습관적으로 보는 넷플릭스는 절대 한 편에서 끊을 수 없다. 그런 날도 있지만 그럴 땐 뒤에 약속이 있거나 아니면 당장 하지 않으면 지장이 있을 무언가가 있을 때다. 


또 다른 건 역시 날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흐린 날엔 집에 있으면 역시 늘어진다. 마음이 늘어지면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산적인 의식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집중력을 빼앗겨 버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오만가지 잡생각들의 팝업창이 열리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내면은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오후 4시는 조금 상징적인 시간인 것 같다. 제아무리 혼돈의 도가니여도 희한하게 오후 4시가 되면 의식이 깨어난다. 하원 시간을 앞둔 의식의 마지노선인 듯싶다. 그래서 오늘도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4시였던 것이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진짜 '나'라는 사람이 웃기단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는 상승 곡선에 있다가 또 하루는 곤두박질치고. 다음날엔 평정심을 유지하다 또 다른 날엔 마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뭔가 싶은 생각에 헛웃음만 짓는다.


그래. 뭐. 깔끔하게 인정한다. 오늘은 그냥 날씨에 졌다. 진건 진 건데,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뭔가 패배자로 결론짓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무기력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잡아 세운 나의 의식을 떠올려 본다. 


든든한 한 끼 식사. 앞에서 끼니를 챙기지 않는 편이라고 했지만 오늘은 유달리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어제 점심 저녁을 모두 밖에서 먹고 들어온 뒤 속이 더부룩했던 탓일까, 평소 잘 찾지 않았던 밥 생각이 났다. 덕분에 뱃속은 든든하고 속은 편하다.


청소. 무기력감이 밀려오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무력한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행동은 청소하는 것이라는. 그래서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야 매일 하는 루틴이지만 오늘은 나를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효과가 있었다! 


가벼운 운동. 정말 말 그대로 가벼운 운동이다. 아니 움직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냥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을 뿐이니. 근데 그마저도 이렇게 효과가 있을 줄이야. 몸에 살짝 열이 오를 만큼 뛰고 나니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여기까지 하고 나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최근 그래도 잘 넘기고 있다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푹 꺼져있던 건 다분히 날씨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떠넘겨본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의지가 약한 사람 같아 보인다. 아무래도 앞으론 날이 흐리면 무조건 스타벅스에 가야 할 것 같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으면 날이 흐린 줄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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