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다가 알람과 상관없이 몸이 깨어나는 순간이 있다. 보통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인 경우가 많은데 납득할 정도의 수면 시간이 지난 뒤에 깨어나는 건 그 나름 개운함이 있다. 그런데 분명 잠든 지 겨우 서 너 시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고 난 뒤의 컨디션은 약간 복불복이다. 근데 하필 오늘은 복이 아닌 불복 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 거리고 뼈 마디가 쑤시는 게 몸살기가 도는 듯했다. 견딜 만은 했기에 일단 채비를 하고 교회에 다녀왔다.
오후 내내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자고 일어나도 기운이 없었다. 아무래도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다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후 6시 즈음 집을 나서는데 유달리 노을이 짙은 하늘과 먹구름이 섞여 있는 게 장관이었다.
병원 진료를 받고 나니 아직 초기 증상이라 약 처방은 받았지만 그냥 잘 쉬는 것 밖에는 달리 할 게 없는 듯하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아이가 가족 저녁 식사 모임에 간 틈을 타 집안 정리를 좀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좀 버리니 한결 힘이 도는 기분이었다. 역시 누워만 있는 게 능사는 아니지.
감기 때문인지 아님 장염기 때문인지 명확한 원인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둘 다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요 며칠 속이 안 좋았던 게 가장 큰 이유인 듯싶었다. 집에서 무쳐 먹었던 봄동 겉절이가 매웠던 게 가장 의심스럽다.
잠시 집에 혼자 있는 동안 글이라도 써야겠다 싶어 자리에 앉았다. 오늘 몸도 안 좋은데 그냥 건너뛸까 했지만, 사람이 자기가 내뱉은 말이 있어서 그런가 차마 건너뛰질 못하겠더라. 짧게라도 쓰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조용한 집, 좋아하는 음악에 초기 몸살기가 더하니 글 쓰는 데는 이것도 그 나름 나쁘지 않은 조합인 듯하다. 약간 힘이 빠진 상태로 글을 쓰려하니 오히려 집중이 잘 되는 기분이랄까.
몸이 아플 때면 늘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박진영이 작사 작곡하고 가수 김범수가 불렀던 '지나간다'라는 곡. 실제로 박진영이 이 곡을 만들 때 된통 아프고 나서 만들었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가사 첫 소절이 그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곡이다.
감기가 언젠간 낫듯이 열이 나면 언젠간 식듯이
감기처럼 춥고 열이 나는 내가 언젠간 날거라 믿는다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내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이 이별의 끝을
'감기'라는 소재를 담고 있어서 떠오르는 것도 있지만 실제 감기에 걸려 힘들었던 상황을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별 것 없는듯한 하루에서도 공감의 요소를 담아낼 수 있는 글쓰기. 내가 잘하고 싶고 주로 푹 빠져드는 이야기의 흐름이다.
생각해 보면 일상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듯하면서도 잘 헤쳐 보면 그 안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그걸 발견할 수 있는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몸살 초기라지만 그래도 머리는 무겁고 뼈 마디는 쑤시는 게 어쨌든 별로다. 자고 일어나면 똑 떨어졌음 하는 마음을 담아 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참 그저 시시콜콜한 일상의 단상을 기록한 듯하다. 아무렴 어떤가. 그런 중에도 글은 쓰겠다고 자리에 앉았지 않은가. 글쓰기 3년에 내가 이런 인간이 된 게 그저 뿌듯하다. 오늘은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