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남은 나의 가장 고상한 취미활동

by 알레

오전 8시 10분. 연이어 울리는 알람 진동을 듣고 잠에서 깼다. 8시 10분. 직장인이었음 아마 화들짝 놀라 침대 밖으로 튕겨져 일어났을 시간.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아직 시간이 이것밖에 안 되었네'하는 마음으로 다시 머리맡에 내려놨다. 5분쯤 지났을까. '아, 녹음!' 정신이 번뜩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팟캐스트 녹음이 있는 날이었음을 잠시 잊었다.


늦은 건 아니고, 몸과 정신이 잠에서 깨어나 성큼성큼 걸어 지하철 역에 가도 허리가 아프지 않으려면 나름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번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또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간절기가 좋으면서 싫은 건 춥다기 보단 서늘하고 덥다기 보단 선선한 시기라 좋지만 점점 서늘함도 시리다고 느끼니 겨울옷을 입어야 할지 얇게 입어도 될지 늘 고민이다. 대부분의 외투는 짙은 색을 띠고 있다 보니 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입춘이 지나면 괜스레 꺼내 입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늘 옷장 앞에 서서 거의 명상을 하듯 한참 멈춰서 있다.


오늘은 적당히 두툼한 스웨터와 셔츠를 걸치고 패딩조끼를 두른 체 집을 나섰다. 어차피 주로 머물러 있을 곳이 실내이니 뭐 지하철 역까지 오가는 동안 잠깐 추우면 그만이다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9시가 넘은 지하철도 왜 그리 사람이 많은지. 요즘은 출근 시간이 많이 늦춰진 건가 생각하며 만원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몸을 맡긴 채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잠깐의 짬이 나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활동이자 힐링이 되는 시간. 오늘은 나의 팟캐스트 <알레쓰바> 녹음이 있는 날이다.


취미활동이라고 표현한 건 뭐 사실 내가 음악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적 지식을 전하는 방송도 아니며 별다른 수익을 만들어 내는 활동도 아닌 그야말로 좋아서 하는 방송이니 취미의 범주에 분류해 두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좋아서 1년 이상 지속하는 게 살면서 몇이나 될까? 문득 생각을 되짚어 보지만 그리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 그중에 하나가 음악 방송이다. 아니, 정확히는 음악을 빗댄 인생 수다 시간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짜임이 없고 누구도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서 또 덕분에 많이 배운다.


사람이 곧 책이고 또 책에 다 담을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삶에 대해 나누는 걸 즐긴다.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이 오가는 동안 나의 우주는 계속 확장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소재의 이야기를 나눴지만 오늘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노래는 최백호 님의 <찰나>라는 곡이었다. 그 노랫말에 담긴 생각이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과 맞닿아 있었다.

조금 세상에 익숙해지고 문득 뒤돌아 생각해 보면 두 번 다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들이여
빛나는 순간 희미한 순간 그 모든 찰나들이 나의 삶을 가득히 수놓았음을


삶이 해를 거듭할수록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삶은 번복할 수 없기에 내딛는 한 걸음이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래서 더 겁 없이 내디딜 필요도 있다고.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때론 빛나고 때론 희미할지라도 결국 우리의 삶을 가득히 수놓는 찰 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만남은 나에게 가장 고상한 취미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책을 통해 저자와 만나듯, 음악도 결국 작사가, 작곡가, 그리고 가수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스튜디오에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4명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간 셈이다. 덕분에 오늘도 깊어질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도 잘 힐링하고 돌아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