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10분. 연이어 울리는 알람 진동을 듣고 잠에서 깼다. 8시 10분. 직장인이었음 아마 화들짝 놀라 침대 밖으로 튕겨져 일어났을 시간.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아직 시간이 이것밖에 안 되었네'하는 마음으로 다시 머리맡에 내려놨다. 5분쯤 지났을까. '아, 녹음!' 정신이 번뜩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팟캐스트 녹음이 있는 날이었음을 잠시 잊었다.
늦은 건 아니고, 몸과 정신이 잠에서 깨어나 성큼성큼 걸어 지하철 역에 가도 허리가 아프지 않으려면 나름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번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또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간절기가 좋으면서 싫은 건 춥다기 보단 서늘하고 덥다기 보단 선선한 시기라 좋지만 점점 서늘함도 시리다고 느끼니 겨울옷을 입어야 할지 얇게 입어도 될지 늘 고민이다. 대부분의 외투는 짙은 색을 띠고 있다 보니 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입춘이 지나면 괜스레 꺼내 입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늘 옷장 앞에 서서 거의 명상을 하듯 한참 멈춰서 있다.
오늘은 적당히 두툼한 스웨터와 셔츠를 걸치고 패딩조끼를 두른 체 집을 나섰다. 어차피 주로 머물러 있을 곳이 실내이니 뭐 지하철 역까지 오가는 동안 잠깐 추우면 그만이다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9시가 넘은 지하철도 왜 그리 사람이 많은지. 요즘은 출근 시간이 많이 늦춰진 건가 생각하며 만원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몸을 맡긴 채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잠깐의 짬이 나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활동이자 힐링이 되는 시간. 오늘은 나의 팟캐스트 <알레쓰바> 녹음이 있는 날이다.
취미활동이라고 표현한 건 뭐 사실 내가 음악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적 지식을 전하는 방송도 아니며 별다른 수익을 만들어 내는 활동도 아닌 그야말로 좋아서 하는 방송이니 취미의 범주에 분류해 두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좋아서 1년 이상 지속하는 게 살면서 몇이나 될까? 문득 생각을 되짚어 보지만 그리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 그중에 하나가 음악 방송이다. 아니, 정확히는 음악을 빗댄 인생 수다 시간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짜임이 없고 누구도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서 또 덕분에 많이 배운다.
사람이 곧 책이고 또 책에 다 담을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삶에 대해 나누는 걸 즐긴다.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이 오가는 동안 나의 우주는 계속 확장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소재의 이야기를 나눴지만 오늘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노래는 최백호 님의 <찰나>라는 곡이었다. 그 노랫말에 담긴 생각이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과 맞닿아 있었다.
조금 세상에 익숙해지고 문득 뒤돌아 생각해 보면 두 번 다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들이여
빛나는 순간 희미한 순간 그 모든 찰나들이 나의 삶을 가득히 수놓았음을
삶이 해를 거듭할수록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삶은 번복할 수 없기에 내딛는 한 걸음이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래서 더 겁 없이 내디딜 필요도 있다고.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때론 빛나고 때론 희미할지라도 결국 우리의 삶을 가득히 수놓는 찰 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만남은 나에게 가장 고상한 취미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책을 통해 저자와 만나듯, 음악도 결국 작사가, 작곡가, 그리고 가수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스튜디오에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4명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간 셈이다. 덕분에 오늘도 깊어질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도 잘 힐링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