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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볼 때 자막이 필요한 이유

by 알레

'드라마를 볼 때 자막을 켜고 본다고? 외국 드라마도 아니고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는데 자막을? 대체 왜?' 친한 부부와 저녁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사뭇 놀랐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보는데 자막을 켜고 보다니. 외국인도 아니고. 이유를 듣고 보니 납득할만했다. 육퇴 후 TV를 보고 싶은데 아이가 깰까 봐 소리는 거의 무음에 가깝게 설정해 두고 자막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볼륨을 적당히 작게 틀면 될 텐데 굳이 자막까지'라고 생각했던 게 수년 전 일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부부는 넷플릭스나 각종 OTT 드라마를 볼 때 꼭 자막을 켜고 본다.


우리가 자막을 켜기 시작한 건 육아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언젠가부터 드라마 속 대사가 뭉개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오래전 TV는 스피커가 전면에 있었던 반면 TV가 얇아지고 성능이 좋아지면서 자체 스피커가 뒤쪽으로 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인지 간혹 드라마 속 배경음악과 대사가 겹칠 때면 대사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사톤 자체가 낮거나 약간 웅얼거리는 느낌이라면 더욱.


한 번 켜기 시작한 자막은 가히 중독적이라 할 수 있다. 자막을 본다는 표현을 넘어 점점 의존하게 되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대체 언제부터 TV를 보고, 듣고, 읽으며 봤단 말인가.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자막을 읽으며 보는 재미에 더 매료되어 버렸다. 그동안은 장면과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했었다면 이제는 대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마치 영상이 있는 오디오 북을 보는 기분이랄까.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던 드라마를 생산자의 측면에서 바라보니 별 것 아닌 대사들도 달리 보인다. 작가들의 기발함에 감탄하게 되고 나였으면 뻔한 표현으로 풀어냈을 상황을 새롭게 풀어낸 것을 보면서 머리를 쥐어짰겠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비단 여행만이 아닌가 보다. 아마 동영상 크리에이터에겐 영상이, 작가에겐 시나리오가, PD에겐 연출이, 연주자나 프로듀서에겐 음악이 각자의 의미로 해석될 것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대사 표현에 집중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선 OTT들 간의 자막 구현 방식을 비교하기도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역시 넥플릭스가 가장 좋다. 주로 넷플릭스 아니면 디즈니 채널을 이용하는 편인데 디즈니 채널은 가독성이 다소 좋지 않거나 자막 속도가 느려 장면과 싱크로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마치 콘텐츠에 자막이 미리 깔려있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글을 써놓고 보니 드라마를 보는데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다. 직업병이라고 말하기엔 턱없이 모자라지만 아무래도 요즘 나의 삶에 중심이 되는 것이 읽고 쓰는 것이다 보니 '뭐 눈엔 뭐만 보이는 격'이랄까. 원예회사에 근무할 땐 그렇게 식물만 보이더니 이젠 자막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산다.


그래도 어느덧 생산자의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나 자신이 조금은 뿌듯하다. 지나온 3년이 나의 체질에 변화를 만든 셈이다. 남들에 비하면 대단할 것 하나 없다고 여기지만 본능적으로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과 방향을 찾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살았다는 소리니까.


항상 더 잘 쓰고 잘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기에 달리 보기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삶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는 이미 내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계속 그 시간을 향해 나를 이끌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자막이야기 하다 뭔 인생이야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막을 켜놓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분명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많이 받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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