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변화조차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
“알레 님, 오랜만이네요”
“우와, 그새 머리가 또 많이 자랐네요!”
"분위기가 너무 다른데요? 잘 어울려요!"
“머리는 계속 기르실 생각이에요?”
단골 헤어숍에 가면 원장님과 하루 종일 수다가 이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원장님은 부쩍 길어진 내 머리를 보며 칭찬 일색이다.
그저 멘트일지라도 기분은 좋다. 언제나 기분 좋은 텐션을 유지시켜주니 긴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다.
작년 추석이 지나면서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 길러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갓 대학생이 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머리가 묶일 만큼 길러본 적은 없다. 그 시절에도 이만큼 길었던 것은 아니니 어찌 보면 처음 머리를 길러보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컬이 들어간 파마머리를 하고 났더니 이미지가 참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그 무렵 빈티지 스타일의 옷을 많이 입고 다녔는데 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 만삭 사진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직원분들이 슬쩍 물어봤다.
"저기, 혹시 방송 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혹시 작가님이나 PD님이세요?"
재미난 경험이었다. 방송은 나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분야였다. 난 그저 평범한 회사의 영업사원일 뿐이었는데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머리를 길러보니
머리를 길러보니 평소에는 잘 의식하지 못했던 것 세 가지를 느끼게 되었다.
첫 번째로는 헤어숍은 지친 삶에 힐링의 공간이 되어 준다는 점이다.
일상의 피로가 누적된 주말,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두피 마사지를 받고 케어를 받는 시간 동안 마치 마사지 숍에 있는 것처럼 점점 몸이 이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샵에 가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청난 응대를 받는데 이것은 응대를 넘어 환대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해 준다. 펌이나 염색을 할 경우 2-3시간은 기본적으로 소요되지만 이 시간마저 지루하기보다 힐링이 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해주니 문을 나서는 게 아쉬울 정도다.
그러면서 왜 그리 사람들이 헤어숍에 가면 대화를 나누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직장 동료들이다. 이들과 개인적 친밀감을 형성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사적인 모습까지는 잘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 편으로는 사람들 속에 살면서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헤어숍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들은 철저하게 내 사람이 되어 준다. 그래서 오히려 눌러 담아둔 이야기들조차 쉽게 나오게 된다. 어차피 나는 지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거울을 더 자주 보게 된다.
머리를 묶기 위해 거울을 본다. 머리가 얼마나 자랐나 궁금해서 거울을 본다. 평소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던 옷이 왠지 너무 잘 어울려 보여 거울 앞에 선다. 어떤 이유로든 거울을 더 자주 보게 되니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생각보다 자신의 표정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는데 정작 내 마음을 살피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 머리를 기르고 나서야 틈틈이 보게 된 거울을 통해 이제야 내 마음을 보게 된다. 오늘 기분이 어떤지, 하루의 컨디션은 어떤지 체크해보며 조금 더 나 자신을 가꾸게 된다.
세 번째 변화는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킨다.
헤어 스타일의 변화는 그저 미미한 환경의 변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경험한다. 무채색 같던 삶에 색을 칠하기 시작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브랜딩이 시작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이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문득 과거에 한 인테리어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단정한 차림으로 고객들을 만날 때 고객들이 반신반의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머리를 기르고 의상 스타일을 바꾸고 났더니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면세계만큼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클라이언트들 역시 전문가다운,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우선 의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직장에서도 '그래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여겨지듯 외적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된다.
평범하게 보이던 사람의 외모가 변하면 마치 아웃라이어가 되어버린 듯 특별해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머리를 기르고 났더니 어쩐지 사고가 더 유연 해지는듯하다. 또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상상할지 생각해보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헤어 스타일을 바꾸면 삶이 변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그러나 나비효과처럼 작은 변화조차 시도할 용기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큰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억지스러워 보인다.
최근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슷한 맥락의 경험담을 자주 접하게 된다.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만 굳이 언급해보자면 책을 100권 읽고 싶으면 일단 한 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심삼일도 시작하는 첫날이 있어야 삼일을 가는 것이다.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오늘 하루 나는 어떤 변화를 이루어 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년 뒤에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오늘 당장 나는 그 첫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계획을 짜는 것이든, 무언가를 실천하는 것이든 상관없다.
결국 처음이 없으면 그 계획은 영원히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변화를 꿈꾸고 있다면, 지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변화를 꿈꾼다면 헤어스타일부터 바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