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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Nov 02. 2021

퇴사하고 제주 한 달 살기 떠나요

- 떠나보면 뭐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 떠나봤습니다.

11월. 제주로 떠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공항의 풍경이 낯설다. 휴가 시즌도 아닌 이맘때 제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는데 공항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코로나도 무색할 만큼 제주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저 들떠보이기만 한다. 


따지고 보면 사돈 남 말하는 상황이다. 나도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제주로 떠나고 있으니 코로나 운운할 처지는 아니겠다. 제주 한 달 살기. 유럽 여행 마냥 가슴속에 담아둔, 그러나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그 계획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왔다. 퇴사와 동시에 짐을 싸고 훌쩍 떠나 도착한 제주의 조용한 해안 마을은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기분을 들게 만든다. 


숙소의 구조와 인테리어 느낌, 빛이 스며드는 창, 그리고 집 안에 배어있는 향기마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왜 떠났어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떠났어요?"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우선은 쉬고 싶었어요."

정말 그냥 쉬고 싶었다. 5년의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기로 결정했을 무렵 이미 아내와는 제주 한 달 살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삶이란 게 겪어보니 언제 또 어떤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질지는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라는 말로 자잘한 많은 것들을 미루며 살다 보니 해본 것보다 놓쳐버린 것이 더 많았음을 깨달았고 언제나 그것들이 아쉬움과 후회로 남았다. 


사실 쉬고 싶어서 회사 그만둔다고 하면 다들 '참 대책 없는 사람일세'하는 표정을 감추지는 못한다. 나도 잘 안다. 육아를 시작한 가장으로서 그냥 쉬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건 말 그대로 무책임한 처사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만큼 난 시간을 벌었다. 아내랑 아기랑 진득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평일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하는 사람과 평일 낮에 가족들과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날의 삶은 퇴사라는 종착역에 도착하여 내가 부러워하던 그들의 삶으로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멋지지 않은가? 


또 다른 이유는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물리적으로도 육지와 단절되어있는 제주도의 환경 조건이 나의 현재를 익숙했던 지난 삶으로부터 단절시켜준다. 이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다. 행동하는 것, 운전하는 것, 그리고 생각조차 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다. 어둠이 짙은 곳에 있으면 작은 불씨도 밝게 보이듯 철저하게 낯선 곳에 나를 가둬둠으로써 더 밝게 조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내가 제주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크게는 독서와 글쓰기, 두 가지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평소 독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늘 갈증이 있었는데 한 달의 시간을 터닝 포인트로 만들 것이다. 읽기는 곧 쓰기와 연결된다. 잘 쓰고 싶고 깊이 있게 사고하고 싶은 나에게 독서 근육은 필수조건이다. 


이 두 가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이다. 이제까지 해오던 일과 다른 것을 하고 싶어 졌지만 나의 위치는 이제 겨우 킥판을 잡고 물장구나 치고 있는 초심자에 불과하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읽고 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때론 더디고 지루해 보이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판단했기에 나를 던져 스스로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사실 말은 거창한데 나도 솔직히 한 달이 얼마나 나를 변화시킬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한 달의 실천하는 삶을 통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본 경험이 있기에 제주 한 달 역시 나를 변화시켜줄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또 너무 변화에 대한 강박 속에 시간을 함몰시킬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쉼과 함께 하는 시간이니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떠나보면 안다고. 떠나기 전에는 그저 두루뭉술해 보이는 것들이 선명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번 한 달이 나에게 그런 시간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쌓여가는 시간을 계속 기록하다 보면 새로운 궤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것을 찾기 위해 떠난 것이다. 

마흔 살에 모든 것들 뒤로 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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