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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Nov 08. 2021

제주 살이를 통해 발견한 삶의 가치

- 결핍은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다.

결핍. 

단어만으로는 달갑지 않은 느낌이지만 때로는 결핍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모자람이 늘 안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오래전 우리들의 삶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진부한 표현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얼마만큼 이 풍요인지조차 이제는 더 알 수가 없다.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한다. 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싶어서 경제활동을 한다. 그런데 인생의 아이러니는 아등바등 살다 보면 어느새 안정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흔 살까지의 나의 삶은 이상한 궤도 속에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계속 달려왔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삶은 더 불안정해지는 것일까. 


그래서 멈췄고 의도적 단절을 위해 제주로 떠났다. 






제주에 내려온 지 한 주가 지났다. 지난 한 주는 온 가족이 제주에 다녀가면서 분주함 속에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이제와 깨닫게 되는 것은 가족이 내 삶에 최대의 풍요라는 사실이다.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나에겐 가족이 채워주는 안정감이 참 크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감사한 한 주를 보냈다. 


다시 찾아온 월요일. 제주는 아침부터 세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내내 날씨가 좋았던 지난 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한 주가 시작되었다. 가족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고 다시 우리 세 사람만 남았다. 


한 달을 살면서 그 와중에 숙소를 세 번 옮길 계획을 하니 식료품을 쟁여놓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늘 하나둘씩 부족한 것들이 생긴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자리를 잡은 터라 걸어서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편의점도 결코 가깝지는 않다. 


서울의 삶과 달리 제주도의 삶은 나에게 결핍 그 자체다.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는 서울과 달리 제주는 굳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머물고 있는 숙소만 해도 그렇다. 하루에도 수십 번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마저 집을 돌아가야 있어서 자잘한 걸음도 많아진다. 


서울에서는 쉽사리 거르던 아침도 여기선 꾸역꾸역 시리얼 한 그릇으로 해결한다. 한 끼 한 끼가 모두 비용이니 어떻게든 아끼려고 고민한 결과다. 집에서는 편리한 토스트기로 빵을 구워 먹던 것도 프라이팬에 계란을 입혀가며 구워야 한다. 


뭐 하나 내 것이 아니기에, 익숙한 것들이 아니기에 불편하다.

그런데 모자라다고 느끼는 것들 덕분에 가지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더 소중해진다. 


화장실을 한 번 가기 위한 불편함이 오히려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아이가 있어서 침대가 없는 집을 숙소로 구했는데 심지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나에겐 운동이 된다. 그동안 편리함에 젖어 얼마나 움직임이 없이 살아왔는지 작은 움직임 조차 나를 개운하게 만든다. 


짧은 여행이 아니다 보니 이미 경제적 결핍으로 시작했다. 필요 외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사용하던 핸드드립 세트도 모두 챙겨 왔다. 덕분에 매일 홈카페를 즐긴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업무에 대한 생각들과 또 가슴 가득 품었던 불만족스러움도 사라지고 나니 빈 공간에 제주의 풍경이 채워진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밑 빠진 독에 무언가를 채워 넣고 또 넣어야 하는 듯했는데 이곳에서는 정 반대다. 자연스럽게 채워지고 넘치면 또 흘려보내게 된다. 


굳이 모든 것을 애써 채우려 하지 않는다.


 




결핍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반면 결핍은 내가 가진 것들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어 준다. 


제주살이를 통해 때론 풍요로움이 독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풍요로움은 감사한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희석시켜버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참 소중하다. 긴 여행은 어쩌면 스스로 결핍의 자리로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 끼니가 감사하고 한 잔의 커피가 의미 있다. 


어쩌면 재능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대체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이내 나의 무능함에 화가 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세상에 넘쳐나는 콘텐츠들 속에 살다 보니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퇴사 이야기도, 제주살이 이야기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을 자주 망각하게 된다. 이미 멋들어지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내려 보는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때로는 콘텐츠의 풍요 속에서도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면 텅 빈듯한 공간에 진짜 내 것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부터 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자.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 보기로 하자.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잠자고 있던 크리에이터 세포가 깨어날지 혹시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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