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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Nov 23. 2021

여행과 삶의 그 어디쯤에 있는 제주 한 달 살기

제주도 한 달 살기.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 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실제로 퇴사 후 현재 제주 한 달 살기 중에 있다. 20대 때 어학연수와 군입대를 제외하고는 한 달 이상 집을 떠나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생각하게 된 점이 있다. 한 달 살기는 과연 여행일까 아니면 삶일까.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기 위해 일단 여행과 삶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소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둘의 차이가 다소 명료해지는 것 같다.


여행은 소비에 대해 적극적이다. 새로운 것들, 맛있는 것들, 좋은 것들에 대해 지출을 아끼지 않게 된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의 제약을 가진 만큼 비용을 들여가면서 까지 시간을 꾹꾹 눌러 사용하게 된다. 반면 삶은 소비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것들에 대해 신중한 가치 평가를 하게 되고 어쩌다 한 번 이행하게 된다는 점이 내가 생각한 차이점이다. 




처음 계획을 하며 유튜브를 찾아볼 때 마음은 삶에 가까웠다. 퇴사를 하고 떠난다는 점을 고려하여 경비를 아끼는 부분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도 한 군데에서 한 달을 보내려고 했었다.


콘텐츠를 계속 찾아보니, 제주도도 은근 동에서 서가 멀다는 말이 참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왕 한 달을 살아보는 거 동쪽도 서쪽도 나눠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결국 숙소를 세 군데에 예약하게 되었다.


숙소에 대한 지출이 총지출의 7할은 차지하고 있는 듯싶다. 이미 여러 군데로 나누어 지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각오한 부분이라 아깝지는 않다. 그럼 나머지 부분에서 절약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주 생활공간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한 달 살기를 시작해보니 매일매일을 여행같이 보내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제주도는 날씨가 허락할 때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있었기에 날이 좋으면 무조건 어디든 다녀오려 집을 나서게 되었다. 


집을 나서면 기본 한 끼는 외식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회, 흑돼지, 고기국수, 등 기본적으로 제주에서 먹어볼 음식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매일 기분에 취해 술 한 잔을 하게 되면 어느새 배는 불러오지만 통장은 점점 배고파짐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돌이 안된 아기가 함께 있기에 어딘가 갈 데도, 무언가 할 것도 딱히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조금은 덜 쓰게 되고 자연스레 집에서 해결하게 된다. 


여행의 기분에 취해 지내온 지난날들에 대해 중간 정산을 해보니 이제 더 이상 여행일 수 없는 시간만 남겨졌다. 삶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다짐해보지만 날씨는 왜 그리 따뜻하고 좋기만 한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한 달 살기란 온전한 삶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잘했다 싶은 건 숙소의 컨디션을 조금은 괜찮은 곳들로 결정했다는 부분이다. 더 저렴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공간으로서 숙소의 의미는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조금은 욕심을 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덕분에 독서와 글쓰기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이제 제주살이도 8일밖에 남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은 참 짧다. 순식간에 많은 날들이 흘러가버렸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제주 한 달 살기는 여행으로 시작해 삶이 되어갈 무렵 끝이 나는 듯하다. 


이 시간이 삶이 되어 가기 시작하니 점점 서울 집이 그리워지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편안한 침대, 익숙한 가전제품들과 생활환경, 늘 그렇게 벗어나 보고 싶었던 그것들이 그리워진다. 마음이 이처럼 간사하다. 익숙함이 지루하다 느껴져 떠났더니 막상 지루함은 편안함으로 바뀌어 이제는 그리움으로 자리한다.



 

이랬다 저랬다 한 마음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익숙한 나의 공간들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꼭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집 밖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나의 익숙한 삶의 공간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제주 한 달 살기가 꼭 여행이거나 삶, 둘 중 하나여야 할 필요는 없겠다 싶다. 그냥 그 어디쯤에 있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아가 마주할 나의 일상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주 살이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내 마음먹기에 따라 일상도 여행과 삶 그 어디쯤에서 적절히 왔다 갔다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 마음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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