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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Dec 03. 2021

퇴사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 육아라는 이름의 고행길에서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법

퇴사의 과정을 기록하여 브런치 북으로 발행한 이후 회사를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더 지나버렸다. 시간은 언제나 참 빠르게 흘러간다. 제주도에 한 달 살기 하러 내려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시 육지로 돌아와 늘 살아왔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노매드의 삶을 꿈꾸며 직장인 신분에서 자유인이 겨우 된 지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어느새 과거의 생활 패턴은 모두 잊힌 느낌이다. 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준비하여 집을 나서던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어디 장기 여행이라도 떠난 듯 삶이 참 느긋하다.


사실 이런 삶의 변화가 싫지 않다. 서두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가장 행복한 것은 역시 매일 아침 아가의 미소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출근하던 시절에는 언제나 곤히 잠들어있는 아가와 아내의 얼굴만 살며시 바라보고 집을 나서곤 했는데, 요즘은 아침마다 셋이 같이 침대에서 뒹굴뒹굴거리니 이게 웬 호사인가 싶다.



솔직히 인생에 어디 호사만 있겠나


퇴사할 무렵 굳게 마음먹었던 것은 ‘진짜 나를 찾아 다 쓰고 가는 삶을 살고 싶다’였다. 제주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은 나에게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은 결코 내 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모든 시간의 우선순위는 아이에게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가끔 그래서 지칠 때도 있다. 왜 아니겠나. 아이의 뻗치는 에너지는 따라갈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아이의 순간을 담아보겠다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아빠로서의 본분을 다해 보기 위함이다. 사진을 찍었으니 기록을 남겨야 함은 당연한 순서이기에 열심히 SNS에 아이와 함께 하는 사진을 올린다. 글도 써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글쓰기는 시작도 못한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은 엄마 아빠의 쉬는 시간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저분한 집을 정리하고 그나마 짬이 나 글이라도 써볼까,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면 아가는 또 어느새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아이가 깨어나면 루틴은 반복된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먹이고 잠시 소화를 시켜주다 보면 아가는 응가를 하고 다시 기저귀를 갈아준다. 그리고 나면 집을 나서 어디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육아는 고행이라고. 아니라고 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틀렸다. 난 매일 고행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이다.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

아빠로 살아가고 남편으로 살아가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점점 희미해질 때가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을 때 글을 써보려고 다시 메모장을 연다. 문장 속에 마음을 쏟아붓는 시간을 갖고 나면 땀 흘려 운동하고 난 후처럼 어딘가 상쾌해짐을 느낀다. 이런 측면에서 글쓰기는 참 여러모로 유용하다.


퇴사 후 한 달의 시간 동안 어떤 것이 달라졌나를 이야기하려다 의식의 흐름이 글쓰기로 이어졌다. 사실 어쩌면 내 안에 나 자신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겉사람으로서의 나는 이미 충분히 바쁘다. 나의 눈은 아이와 아내를 살펴야 하고 끊어질 듯한 허리는 매일을 버텨주려고 애쓰고 있다. 두 팔 과 두 다리는 가장 많은 노동을 하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내면의 나는 아빠도 남편도 아닌 본연의 나를 지켜내려고 계속 글감을 던져준다. 그 와중에 휘발되는 문장들이 참 아깝다. 순간 적어두지 못해 사라지는 문장들은 미련만 남는다. 그래도 돌이킬 재간은 없으니 사라진 것에 미련두지 말고 지금 내면의 내가 던져주는 생각들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이렇게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아빠인 나, 남편으로서 나, 그리고 본연의 나는 서로 이렇게 공생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어디든 깨어지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가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가끔은 나의 식솔들과 부대끼는 삶의 공간에서 잠시 떨어져 혼자만의 공간에 머무르고 싶을 때가 있다. 어쩌면 직장 생활을 할 때 더 애틋할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고 싶고, 책을 읽고 싶으며 나의 앞날에 대한 진중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아빠로서 '책임감'의 무게는 한 개인의 욕구를 뒤로 미루게 만들 만큼 강력하다. 


그래도 행복하다. 먼저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태어나 돌이 될 때까지의 시간은 정말 어떻게 간 줄도 모르게 훌쩍 가버렸다고. 아이가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다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허리를 세우다 바닥을 기기 시작하면 얼마지 않아 두 발로 서게 된다. 1년의 시간에 아가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내는데 그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충고를 많이 듣게 된다. 


맞는 말이다. 이 시간 동안 아이의 마음속에 '아빠의 존재'를 마구 적립해 놓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옆에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아이가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곁에 있는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제 아무리 육아가 고행이라 할지라도 아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 길을 기꺼이 갈 수 있을 만큼 많은 행복을 경험하게 해 준다. 


퇴사 이후 제주도에서 아이와 한 달 살이를 하고 온 이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으로 남았다. 다시 시간을 돌려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도 다시 떠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아이가 볼 수 있도록 더 많은 기록들을 남겨줄 것이다. 결국 그것이 아빠로서, 한 개인으로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서쪽 엉알해안 산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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