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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Dec 09. 2021

비 일상이 일상이 된 삶

-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내 나이 40.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뭐라도 바꿔야만 하는 간절함이 들끓기 시작했다. 약 9년 동안 내가 살아왔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일상이 비 일상이 되는 삶을 선택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만큼 일상에서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결코 가볍지 않다.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15일 또는 그 이상의 연차 휴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보너스처럼 발생되는 대체휴무일은 언제나 가뭄의 단비 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료들 간에는 쉽사리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욕구를 터놓곤 했다. 때로는 로또 1등과 같은 비현실에 가까운 현실을 가정하며 당장의 스트레스를 희소시켜보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입가에 흐뭇한 미소 정도는 띄며 우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과거의 일상을 회상해보면 이러한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대부분 우리의 일상은 그냥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당장이라도 어디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비 일상이었던 시간을 살아가게 되니 종종 주변에서 부럽다는 말을 듣게 된다. 충분히 부러워할 만하다. 나에게 더 이상 인간 군상들과의 부대낌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출퇴근길 교통체증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때로는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 조차 잊어먹게 된다. 


이렇게 나는 매일매일을 기억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나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었다. 지난날의 비 일상을 완전한 일상으로 바꿔주는 적응기였다. 현실감은 사라지고 머릿속이 점점 비워져 갔다. 늘 붙잡고 있던 삶에 대한 고민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이와 함께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는 것이 고민의 전부였다. 


과거에는 어쩌다 주어지는 쉬는 날이면 하루를 어떻게든 꽉 채우려고 애썼다. 늦은 밤까지 꾹꾹 눌러가며 에너지의 바닥까지 긁어 사용했지만 그래도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지난 한 달의 시간은 전혀 달랐다. 세상 가장 여유로운 사람인 것 마냥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지기 전에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쳤지만 언제나 마음은 즐거웠다. 


늘 하루를 꾹꾹 눌러 담아 결국 체해버렸던 과거의 나와 다르게 숨 쉴 틈이 생기니 삶이 다르게 보였다. 바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계획들로 가득 채우지 않아도 하루가 풍족해짐을 알게 되었다. 그저 오늘 하루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삶의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기에 직장을 다닐 때도 퇴사를 한 이후에도 먹고살 걱정은 늘 매한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은 갖게 되었다. 






떠나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들으며 '그렇구나'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난 과감하게 떠나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실천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삶은 어디로든 연결되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두려움은 연결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하나씩 끊어버린다. 인생을 더 오래 사신 분들은 꼭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과감해지라고.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꼭 해보라고. 


마흔 살이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과감해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본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가르쳐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쫓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호흡이 붙어 있는 동안 이래나 저래나 먹고사니즘은 늘 함께 살아가는 고민거리라면 이왕 사는 거 더 과감하게 살아보는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제주에서 돌아와 마주한 현실은 관성처럼 나를 지난날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할 것처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는 일상이 된 과거의 비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삶을 더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삶의 궤적이 바뀌어 가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 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 마흔 살의 무모함은 사실은 용기였다고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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