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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한 생각의 전환

by 알레

'몹쓸 글쓰기'의 새로운 기수 일정이 시작되었다. 매 기수마다 첫날에는 '글쓰기'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 역시 수차례 이 질문을 되짚어 보았다. 많은 말들로 나의 글쓰기에 대해 정립해 나가는 중인데 이번에는 내가 아닌 독자들을 위한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물론 이미 글을 쓰고 계신 분들이라면 그냥 가볍게 고개한 번 끄덕이고 하트 꾹 눌러주는 정도면 충분한 내용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글쓰기'라는 단어만으로도 벽을 느끼는 것 같아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의아했다. '왜?' '글쓰기라는 단어 앞에서 왜 심리적 저항이 생기는 걸까?' 솔직히 나는 처음부터 그런 부담이 없었다. 브런치 작가 심사에 합격했을 때도 어떠한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그런 줄 알았다.


나와 다른 입장을 들으며 '나는 어떤 이유로 그런 부담감이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이유는 '글쓰기'가 친숙했기 때문이다. 설명을 덧붙여 보자면 학창 시절부터 직장생활을 마칠 때까지 숱한 날들을 쓰기와 함께 지내왔다. 이 경험이 비단 나만의 특별한 경험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완전 다른 세대면 모를까 적어도 40대를 지나가고 있는 나와 비슷한 세대들이라면 충분히 같은 시간을 보냈을 거라 믿는다.


아날로그 시대엔 편지를 썼고, 한 때 학창 시절 유행했던 다이어리 꾸미기에 열을 올렸다.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왔는데 내가 고등학생이던 90년대 후반에 내다 다니던 학교에선 친구들끼리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며 롤링 페이퍼 같은 글을 써주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은 스마트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친구들 집 전화번호부터 주소까지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다녔다. 아무튼.


대학생이 되어서는 리포트를, 석사 학위 과정에는 더욱 글 쓰는 게 절반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선 또 어떤가. 그들만의 양식에 맞춰 '보고서'라는 이름의 글을 썼다.


편지, 일기, 다이어리, 리포트, 이메일, 보고서 등 텍스트로 된 작업이 손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던 시절을 보낸 덕분에 '글쓰기'는 이미 삶에 가까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둘 째는 성격상 남의 눈치를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시쳇말로 '쪼대로 한다'는 표현처럼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러려니'로 일관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편하게 쓴다. 물론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난 뒤에는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여러 번 곱씹어 보지만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난 뒤엔 이미 떠난 버스처럼 신경을 꺼버린다.


이런 태도는 꽤나 유용하다고 믿는다. 남들의 평가와 시선에 초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무엇을 시작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주의할 점은 너무 무뎌져 버리면 정말 자기 흥에만 취해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너무 귀를 닫지는 말자.


마지막 요인은 자주 회자되는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이 제법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바로 위에 '세간의 평가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아무렴 내가 초인도 아니고 완전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동안 조회수에 일희일비했던 때도 있었다.


글 쓰는 사람에게 더 잘 쓰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히려 잔뜩 힘을 주게 만들고 흡족할 만한 글을 썼다고 여길 때 되려 처절한 반응도를 목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만의 낙심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계속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문장 때문이었다.


헤밍웨이 같은 대작가님도 초고를 쓰레기라고 표현하는데 하물며 내 글이라고 다를까.


원래 글은 퇴고에서 완성되는 법이다. 설마 '일필휘지'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그냥 쓰면 된다. 남들이 볼까 두렵다면 혼자만의 페이지에 쓰면 그만이다. 브런치를 예로 들자면 아직 내어놓기 부족한 글은 서랍에 고이 넣어두면 된다.


세상일이 그렇듯 차마 시작하지 못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막상 시작하면 별 것 아니었음에 허탈함이 밀려온다. 글쓰기를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 잘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는 되새김질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자기 인생의 발목을 잡는 건 자기 자신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만약 글쓰기에 대한 일말의 바람이 있다면 부디 그냥 써보길 바란다. 혹여 '글쓰기'라는 단어에서 벽이 느껴진다면 '기록' 또는 '끄적거리기' 등 스스로 편할 수 있는 단어를 택하면 된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생각의 전환은 굳이 장애물을 뛰어 넘어설 필요가 없이 우리를 아무런 벽이 없는 옆길로 옮겨준다. 그러니 일단 그냥 시작해 보자. 나도 하는데,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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