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 한 게 이렇게 없지?' '나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내 인생에는 왜 이리 내 보일 게 하나도 없지?'
30대 초, 막 대학원 학위 과정을 마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자주 들었던 생각이다. 뒤늦게 맞이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는 지나온 삶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벌판 같았고 잔 물결 하나 없는 호수 같았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 이번엔 나다움을 찾아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온 궤적을 훑어보는데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그때만큼 절망적인 마음은 아니지만 무의식 중의 생각의 궤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 지인과의 대화 중 10년 전이나 지금의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삶은 무수한 점을 찍으며 살아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각각의 점은 곧 나다움의 파편이다. 즉 나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선 조각들을 연결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을 자주 간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다움'이라는 질문 앞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로 깊이 파고들려고만 했지 지나온 시간을 엮어볼 생각은 자주 하지 못했다. 아니, 했더라도 금방 잊어버렸다.
삶은 이야기를 남긴다. 남길 수밖에 없다. 연속된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존재는 시간의 흐름이 곧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관점은 언제나 점의 크기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크고 확실하며 너무나 선명해서 이력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는 점.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리스트에 등재시켜도 자랑할만한 점. 10여 년 전 취업 준비를 할 때나 개인 브랜딩을 하는 지금도 여전히 내 관점은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모습은 2가지였던 것 같다. 범접할 수 없는 스펙의 소유자이거나 평범한 경험을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러이거나.
이쯤에서 다시 오랜 질문을 하나 되짚어본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바라는 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여러 답을 적어보았지만 '나'를 탐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나'를 탐구하려는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늘에야 그 답을 적어보는 건, ‘나는 글쓰기를 통해 흩뿌려진 나의 삶을 꿰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숫자로 성패가 갈리는 세상에서는 최 상위 그룹에 들지 못하면 다수 중 하나(One of Them)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 속에 찍어둔 점들을 스토리로 연결해 나가기 시작하면 유일한(Only One) 존재가 된다.
글쓰기는 나를 세상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탈출구다. '유일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내 삶의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결국 이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삶을 기록하는 스토리텔링 글쓰기는 어쩌면 우리 자신을 가장 우리 자신답게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열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