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비추어 보는 나의 모습
요즘 한창 사진에 빠져 지낸다. 이때까지 그저 생각 없이 찍어왔던 것과 다르게 기초적인 구도 잡기와 노출을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약간의 감성을 더해줄 수 있는 보정 방법을 배우고 난 뒤로 스마트폰 배터리가 모자랄 정도로 지난 사진들을 꺼내본다.
벌써 오래전 기억처럼 되어 버린 제주 한 달 살이의 사진들을 다시 훑어본다. 보정 연습하기에는 딱 좋은 사진들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러다가 아이의 사진들이 나오면 손가락을 멈추고 하나씩 천천히 보게 된다. 아이의 표정은 참 다양하다. 웃었다가 찡그리기도 하고 인상을 쓰는 듯 아닌 듯 묘한 경계선에 있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무언가에 집중한 듯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으려 하면 귀신같이 알고 갑자기 몸을 획 돌려 남겨진 사진은 흔들린 아이의 몸놀림뿐인 것도 있다.
아이와 함께 떠났던 여행의 시간들을 돌아보다 보면 그저 행복해진다. 육아의 현실은 고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난 시간의 고통은 어떤 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듯 마냥 좋기만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참 뜬금없지만 오랜 시간 성장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기록된 연예인의 자녀들은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음 같으면 우리 집 곳곳에도 관찰 카메라를 설치하여 아이의 24시간 365일을 모두 기록하고 싶다. 그만큼 순간 지나가버려 사진에 담아내지 못해 아쉬운 모습들이 참 많다.
곧 첫 돌이 다가오는 아이의 돌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에 갔다. 아이의 의상을 고르고 콘셉을 설명들은 후 촬영 장소로 이동한다. 아기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스튜디오에 가면 다들 어찌나 텐션이 높으신지. 아이가 정말 지루할 틈이 없다. 덕분에 아가는 촬영 내내 깔깔거리기 바쁘다. 소품이 올라오면 호기심이 발동해 만져보고 들어 보고 입에 넣으려 한다. 작가님이 센터에서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동안 아빠는 방해가 되지 않는 어딘가에 서서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쁘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아가의 양옆에 서서 손을 잡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늘 앉아서 촬영을 하거나 안고 찍었는데 셋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게 되다니. 이 마저도 감격스러웠다. 시간이 제법 흘러 아이도 어른들도 살짝 피곤한 기색이 감돌 때 작가님이 한 마디 하신다.
"지금 아가만 표정을 잘 짓고 있는 거 아시죠?"
"엄마 아빠만 잘하면 금방 끝나요"
순간 머쓱해진다. 아가와 함께 다시 열심히 방긋방긋 웃으며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아기가 표정을 너무 잘 짓는다고 모델을 해도 되겠다느니, 덕분에 즐거운 촬영이었다며 립서비스를 날려준다. 기분 좋게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들을 꺼내보며 혼자 감상에 젖어있을 무렵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오르며 마음 깊이 찡하게 만든다.
아이의 얼굴에는 그 순간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담겨있었다. 느끼는 감정대로 표현되는 그 표정들은 어떤 것 하나도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도 100%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하지만 내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사진 속에 담긴 내 모습을 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작은 눈, 부정교합으로 인해 웃으면 살짝 비뚤어지는 턱.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마저 맘에 들지 않아 나에게는 그저 어색한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때로는 거울을 보며 표정을 연습해보기도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내 모습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가득 차있어서 그런지 어색함은 사진 속에 그대로 투영된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태생적 자연스러움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잃어버린 것. 어른이 되면서 나는 내면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만 것 같다. 나 자신의 표정조차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나는 내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그 모습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한편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의 모습을 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나를 위로해본다. 그 순수함마저 계속 지켜나갈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당연한 듯 생각해보지만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애틋함이 저며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마저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을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막상 아이와 함께 삶을 나누다 보니 그렇게 포기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허리 통증에 고달프지만, 그리고 아이가 자기 고집이 생겨 점점 멋대로 구는 시간이 많아져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아이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태생적 자연스러움을 떠올리게 해주는 보물 같은 존재이다.
내 아이도 자라면서 점점 그 기억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잃어버릴 것이라고 99.9% 확신한다. 그러나 아빠처럼 언젠가 다시 그 마음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조금은 오래 기억하길, 그리고 조금은 더 빨리 그런 마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열심히 사진에 아이를 담아본다.
'이 얼굴은 어릴 적 사진 속의 나와 닮았네', 하며 행복해하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