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오후 4시가 지나면 베란다로 스며드는 햇살이 집안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가만히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하다. 겨우내 추위가 좀 가시고 난 요즘 오후 햇살이 따사로울 때쯤이면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서울 식물원이 있어서 산책 코스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내와는 연애할 때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둘의 수다는 언제나 지루할 새가 없이 계속됐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를 바라보며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어제는 산책길에 아내가 문득 이런 말을 건넸다.
"자기가 퇴사를 하고 난 후, 우리가 비록 지금 크게 돈벌이는 없지만 나는 우리 아기랑 매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한 것 같아. 만약 우리가 맞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아니 당장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면, 이 아이의 시간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이 더 소중해지는 것을 느껴. 그러니 자기도 사는 걱정은 좀 내려놓고 아이에게 더 마음을 써 주었으면 좋겠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최근 몇 주간 나의 상태가 참 별로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를 결정하고 뛰쳐나온 지 벌써 4개월째. 딱히 이렇다 할 경제활동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아내가 파트타임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있고, 나에게는 실업급여라 불리는 수당이 매월 들어오고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다.
퇴사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상환해야 하는 시기도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누구보다 대범했던 나였는데,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넘쳐 다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의 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니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는 현실적인 상황 그 자체보다는 그 속에서 매일 부딪히는 나의 마음 상태가 되려 나를 괴롭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고 이 부분은 크게 예측하지는 못했던 부분이었다.
사실 은행 잔고에 마이너스가 찍히는 것보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음이 언제나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장기화되어갈 무렵부터 내 안에 쌓여가는 불만족스러움은 육아라는 좋은 구실을 만나 온전히 나의 시간을 다 쏟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곗거리가 되었다.
청개구리인가.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을 할 때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주말에만, 아니면 휴일이나 휴가철에만 놀러 갈 수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어딜 놀러 가도 사람 구경만 하는 꼴이 너무 싫다. 퇴사하면 평일을 더 많이 누리며 살고 싶어."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일주일 내내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으니 청개구리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가장이라서 현실에 대한 걱정에서 동떨어져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걱정으로 인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사는 것은 훗날 너무 슬픈 일이 될 것이다. 아이는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언제나 아빠를 불러대며 함께 있고 싶어 함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그런 아이를 거실 한쪽에 두고 방으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아빠였다.
퇴사 후 함께 제주 한 달 살이를 떠날 때만 해도 나의 어린 시절, 해외 출장이 많으셨던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형성된 상실의 경험을 아이에게 되풀이하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방구석으로 떠나 내 아이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에 잠기게 된다.
산책을 하며 들었던 아내의 한 마디는 이제야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앉는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게 만든다. "막말로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어 있잖아. 정 안되며 집이라도 팔아버리지 뭐." 아내가 뒤이어했던 말이다. 그렇다. 난 이렇게 대범한 아내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삶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지금은 돈벌이보다는 추억 벌이를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