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분다. 오늘은 절기상 입동이다. '가을이 오나 보다' 싶었던 게 엊그제였는데 계절의 옷을 빠르게 갈아입더니 뭐 이리 빠르게 벗어던지려 하는 건지 괜히 서운해진다. 계절의 변화를 눈에 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인 것 같다. 변화의 주기에 따라 삶도 같이 무르익어간다는 기분이다.
모든 기록을 꺼내보진 않았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나는 꽤 빈번하게 정체되어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1년 전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 아무래도 현실에 대한 고민이 여전하니 무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만큼 나를 침울하게 만드는 건 없었다.
그런데 정말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을까? 나아지는 게 없는 걸까?
아니다. 분명 요즘의 나는 전과 다른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그럼에도 나의 내면은 전보다 더 평온하다. 이유가 뭘까? 이야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생각의 축을 옮겨버렸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경우 이야기를 잊고 살아간다. 매일 우리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타인과 나누는 대화 중에도 내 입을 통해 내뱉어진 말들은 상대방에게 향하지만 동시에 나의 귀로도 전달된다는 것을 쉽게 망각한다.
나는 우리가 매일 듣는 것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삶을 한 번 돌아보자. 자라면서 어떤 경향의 말을 자주 들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넌 뭐든 할 수 있어!' '넌 최고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가? 아니면 '나중에', '다음에', '그건 쓸데없어', '알겠는데, 안돼'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가?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할 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 중에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회사를 향한 불만, 상사에 대한 뒷말, 거래처에 대한 짜증, 심지어 이 나라에 대한 불평불만까지. 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나의 생각은 그들의 세계와 동기화되었고 어느새 내 입에서도 같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면, 퇴사를 하고 난 뒤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은 성장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거나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고, 나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서로를 진심으로 격려했다. 이들과 함께한 3년간 나의 언어가 다시 바뀌었다. 나도 그들처럼 나다운 삶을 꿈꾸게 되었고 실제로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삶이 달라지는 데에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몇 번의 봄과 겨울을 만나야 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변한다고 믿으면 정말 변한다. 그리고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중심에는 이전과 확 달라진 나의 이야기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연초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건 계획은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수정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나는 결과에 가중치를 크게 뒀다는 것이다. 월 수입, 팔로워 수, 구독자 수 등과 같이 변화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변화를 평가하는 지표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마치 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고 지는 꽃처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다. '오늘 나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가'를 매일 점검하는 것. 삶이 변하고 싶다면 먼저 지금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자. 자연스럽게 발걸음의 방향이 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