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하위에는 진짜로 믿어주지 않는 사람, 나와의 관계에서 믿음을 거론하기엔 관계가 깊지 않은 사람,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냥 이해하기 쉽게 단순히 두 종류로 나눠봤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당신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코칭을 받고 나서 '나를 믿어주는 것'에 대해 자주 떠올린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쯤이야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이 실제로 삶에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확실히 생각이 길어진다. 또는 희미한 목소리로 답을 하던가.
왜 우리는 스스로를 잘 믿어주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굳이 믿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살아가는 걸까?
오늘의 코칭에서 코치님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긴 시간을 함축적인 이야기를 듣고 난 나의 반응은 '코치님에 대한 신비로움이 정말 깨져버렸어요'였다. 나쁜 뜻에서 한 말은 아니었다. 코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처절할 만큼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어떻게 나를 믿어줄 수 있었는지.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이거나 아니면 어떤 획기적인 답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코치님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돌아오는 길에 코치님의 답을 곱씹어 보니 정말 그게 맞겠구나 싶었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건데 나는 습관적으로 조건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삶을 돌아보면 나는 생각보다 나를 잘 믿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좋은 말을 해줘도 정작 나는 그게 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로 필터링되어 받아들였다.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를 사랑한다면 존중하게 될 것이고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이미 내가 충분하다고 이야기해 줘도 정작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문득 올해 초가 떠올랐다. 팀에서 15개월가량 이어오던 글쓰기 모임을, 개인 프로그램으로 전향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모임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내가 속해있던 팀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임에 참여한 작가님들은 무려 15개월을 '나'와 함께 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한 분 한 분께 연락을 드려봤다. 문자로 연락을 드렸지만 아마 전화 통화였으면 굉장히 소심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너무나 감사했던 건 많은 분들이 망설임 없이 계속 함께 하겠다고 해주셨다. 그중 한 분은 솔직히 '저분이 계속하실까?'라는 반신반의했던 분이었는데 선뜻하겠다고 답해주어 기쁘면서도 놀라기도 했다. 뒤이어 다음 기수가 시작될 때면 언제나 1등으로 신청해 주셨다.
'내가 괜한 오해를 했구나'싶고 동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밀려와 솔직한 마음을 건넸다. 진심으로 내가 응원받고 있다는 마음을 전했다. 든든한 응원군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2년의 시간을 작가님들과 함께 해오면서 변함없이 함께 해주고 계신 분들이 많다. 이것만 봐도 충분히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나는 참 지독하게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음이 오늘따라 나 자신에게 미안해진다.
'나 자신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믿음' 앞에 여전히 '어떻게?'라는 물음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지만 오늘 코치님의 답처럼 어쩌면 '그러기로 선택하는 것'이 시작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쓰기 모임을 운영해 온 지난 2년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건 작가님들은 모두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딱 한 사람만 믿어주면 될 것 같다. 바로 나. 감사하게도 코칭을 받고 있는 지금 나는 더욱 나를 믿어주는 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 중에서도 만약 여전히 나를 못 믿겠다면 적어도 나를 믿어주는 내 주변 사람의 판단이라도 믿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쩌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 자신에게 '나'라는 존재는 충분히 믿어줘도 되는 존재임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