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봇 X, Y, Z, 트랜스포메이션!"
아이가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들이 항상 외치는 말이다. 또봇은 카봇과 함께 변신 로봇 자동차 애니메이션이다. 또봇은 2010년부터, 카봇은 2014년부터 방영되었다고 하니 벌써 1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만큼 아이들에게는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꾸준한 사랑의 이면에는 사실 장난감이 크게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뭐, 애니메이션 리뷰를 할 건 아니고, 그래서 왜 뜬금없이 또봇인가 싶을 것 같아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정확히 오늘 아침의 일이다. 잠에서 깬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단 엄마를 찾았다. 평소라면 아내가 출근하는 날 아이도 일찍 준비를 하고 셋이 함께 등원길을 나섰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가 워낙 곤히 자고 있어서 아내가 먼저 집을 나섰다. 늘 신기한 건 아이들에겐 '엄마 센서'가 탑재되어 있는 것 같다. 아내가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모르고 자던 아이가 일어나 엄마를 찾는다.
다른 때였다면 엄마가 이미 출근하고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 아이는 떼를 쓰거나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엄마 보고 싶어'라고 말했을 텐데, 오늘은 마치 뭔가 번뜩 기억이 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나 기저귀에 쉬 안 했어! 또봇 X는 왔어?"
잠시 시간을 하루 전을 돌려 보겠다. 우리 부부의 요즘 고민은 '어떻게 해야 아이가 밤 기저귀를 뗄 수 있을까?'다. 1월생인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또래 친구들보다 뭐든 빨랐다. 딱 하나, 기저귀를 떼는 것만 빼고. 낮에 팬티를 입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12월생 친구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다 한 뒤에 어느 날 불현듯 시작했다. 정말 '불현듯'이라는 표현이 맞는 게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전혀 그럴만한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날 하원하고 오더니 팬티를 입겠다며 입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금방 적응해 버렸다.
아이는 내년부터 유치원에 간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기저귀까지만 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 부부의 바람이며 숙제로 남아있었다. 이번에도 우리 아이가 제일 꼴찌다. 심지어 12월 생인 그 친구마저 밤 기 줘 기는 다 뗐다고 했다.
사실 굳이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생각날 때 한 번씩 아이의 의사를 묻는 정도였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현재는 의지 없음'으로 일관했다. 참 일관된 태도였다. 그렇게 11월까지 왔고, 중순도 지난 지금 언제까지 기저귀를 사야 하나 싶은 마음에 아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들아, 만약에 오늘 밤에 기저귀에 쉬 안 하면 내일 아들이 갖고 싶어 했던 또봇 자동차 사줄게. 어때?"
"좋아! 그럼 또봇 X랑, Y랑, Z랑, A랑, W랑, 트라이탄이랑, 델타트론이랑, 닥, 센, 붐이랑 다 사주는 거야?"
와, 진짜 한 술 더 뜨는 정도가 아니라 요구하는 게 거의 뭐 날강도 수준이다. 뭐 일단 당장 밤 기저귀를 떼는 게 목표니 거래 조건을 하나씩 정리했다.
"일단 오늘 밤에 쉬 안 하면 또봇 X, Y, Z 중 하나가 집에 올 거야." 사실 이미 X, Y, Z, A를 당근거래로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한 방에 패를 따 깔 수 없으니. 그중 하나만 제안했다. 아이는 받아들였다. X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되었고 눈을 뜨자마자 아이는 자랑스럽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한 것이다.
"아빠, 나 쉬 안 했어! 또봇 X는 왔어?"라고.
아이를 기르다 보니 아이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아이가 없을 땐 4살 배기정도 아이에게 의지가 얼마나 클까 싶었는데 완전한 착오였다. 실제로 아이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존재였다. 물론 나이대에 따라 인내의 강도와 의지의 지속성은 다르겠지만 4살이어도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되새기는 건 '아이라서'라는 생각으로 혹여 잘못된 배려를 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먼저 아이의 의사를 묻는걸 항상 생활화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인정욕구와 관련된 콘텐츠에서 아이들에게 결과에 대해서 지나치게 칭찬을 하면 자칫 인정중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대해 칭찬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문득 우리 아이가 결과에 대한 보상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가 돌이켜 보았다. 워낙 머리를 자르는 걸 싫어했던 아이여서 장난감을 하나씩 선물해 줬던 것이 이제는 아이에게 당연한 결과가 되었다. 최근에도 머리를 자르러 가자고 했더니 아이는 대번에 이렇게 답했다. "엄마, 오늘은 어떤 선물을 받을지 기대돼."
이미 길들여진 보상 시스템을 이제 와서 바꿔버릴 수도 없고, 다만 앞으로는 아이의 의지와 그것을 해낸 과정을 더 많이 언급해 주고 칭찬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결과가 도드라지다 보니 과정을 쉽게 놓쳐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은 놀이터에 가자고 떼를 쓰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또봇 X 덕분에. 과연 우리 아들은 내일 또봇 Y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인가? 무척 궁금해진다. 일단 오늘은 아이랑 신나게 외쳐야겠다.
"또봇 X 트랜스포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