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한 해를 돌아보며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긴 시간을 그럼에도 굳이 한 마디로 정리해 본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날들은 언제나 행복했고
앞으로의 날들도 행복할 것이다.
내 글을 오래 읽어주신 분이라면 조금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정을 드러내는데 솔직한 사람이기에 불안감과 우울감을 숱한 글 속에 담아냈는데 이제 와서 모든 날들이 행복했다고 하는 내가 좀 표리부동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주식 투자자도 아니면서 자꾸 어떤 상황에 대한 비유를 떠올릴 때면 주식 차트가 생각나는 건 대체 무슨 조화일까. 표리부동한 나를 굳이 설명해 보자면 행복은 완만하게 우상향 중인 365일 이동평균선에 해당되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은 3분 봉 차트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당연히 불안감과 우울감이 존재한다. 여전히 상황은 뭐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요즘의 나는 행복감을 더 자주 느끼고 있다. 그만큼 전보다 행복을 발견하는 감각이 민감해진 듯하다. 아마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소소한 일상에서 더 많이 감탄하고 아낌없이 표현하는 사람이 된 것이지 않을까.
오늘은 책을 읽던 중 감동이 밀려오는 부분이 있어서 작가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가끔 이렇게 주최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면 일면식도 없는 그 대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주책력과 감탄력을 가지고 있음 조차 감사하다.
인간의 뇌는 시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수만 가지 정보를 대부분 걸러 내고 그중에 아주 소수만 남긴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건 인간의 본능이란 소리겠다. 그렇다면, 행복을 쌓고 싶다면 행복의 요소를 더 많이 바라보고 받아들이기를 반복하면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와우!
열심히 살아온 우리들의 지난날들에 우리가 열심을 냈던 건 과연 행복을 쌓는 일이었던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오히려 나를 다그치며 코너에 몰아세우며 만들어낸 불안감과 위기감으로 표출된 에너지가 '열심'으로 드러났던 건 아니었을까?
오늘 본 이아롬 작가님의 책, <별에게 맹세코 잘돼>에는 작가님이 아이 둘을 데리고 캐나다로 건너가 학위 공부를 하며 경험한 캐나다 생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중에 무척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캐나다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 수업시간에서 아이들을 칭찬하는 데 사용하는 표현이 대략 28가지가 된다는 부분이었다. 학기가 아닌, 하루도 아니고, 수업시간 하나에서!
살면서 28 연타 칭찬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의 나는 28가지 칭찬의 어휘를 알고는 있던가?
요즘 계속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긴 한데, 이제야 깨달은 건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이 언어를 바꾸며 된다는 것이다. 거울을 보고 한 번 연습해 보자. 아주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쌍욕을 해보자. 아마 느낌도 안 살아날 것이면서 한 두 마디 해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것이다.
이번엔 동일한 표정을 나를 마구 칭찬해 주자. 민망할 것 같으면 아무도 없을 때 해보기를 추천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없던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오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없던 자신감마저 생겨남을 느낄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배운 건, 행복은 몸과 마음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을 때 빈번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걸 알고 나니 행복의 요소가 정말 가까이에 흩뿌려져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지난날들은 행복했고 앞으로의 날들도 행복할 거라고.
부디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본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도 파란 하늘은 언제가 거기에 함께 존재하고 있듯 우리 삶에도 행복은 늘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