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로 끝나는 수많은 바람들을 떠올리거나 입밖에 내어 본 적은 많다. 그런데 정작 그것들 중에 행동으로까지 연결된 건 몇이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행동 없는 결단은 없다. 그것은 결단이 아니라 그저 욕망의 발현 정도에 그치는 언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간절함'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렇다'라고 일갈하는 식의 발언은 무책임하다고 여겼다. 왜냐면 나 역시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늘에야 그때 그 말의 진위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야 '절실함'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또한 느끼게 된다.
나의 행동은 나의 신념에서 비롯된다. 신념은 곧 믿음이고, 가치관이며, 오랜 시간 나에게 자리 잡힌 연속된 생각의 방향이기도 하다. 또 다른 말로 목적이고, WHY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그 수면 아래에는 그 행동을 유발하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를 만나고 발견한다는 것은 바로 그 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면 위에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 살아온 궤적을 훑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축적된 행동을 살펴보면 그 아래 행동의 이유가 되는 신념이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
똑같이 간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1-2년 전과 오늘이 다른 이유는 그땐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그땐 그저 '나도 나름 고민하고 애쓰는데 왜 나에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에 답답함만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이 다른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믿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어찌 보면 한 끗 차의 믿음 같지만 그것이 행동을 유발하고 말고의 가장 큰 버튼이 된다.
성공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결과적 차이는 실행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을 믿고 있느냐다. 과거의 나는 딱 월급쟁이가 숙명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는 회사 말고 다른 길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양한 삶을 보게 되었고 어쩐지 나도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막연했지만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의 불씨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 뒤로 퇴사를 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헤매기도 헤맸지만 열망의 불씨는 오히려 더 커졌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강해졌다. 점점 나의 믿음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는 지난날 잘 못 세팅되어 있던 믿음을 발견했다. 현재는 그것을 새롭게 재설계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나를 통해 깨달은 건, 불씨만 있어도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은 타오른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행동의 반경은 점점 커지고 어느 순간 꽤 대범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불안과 두려움이 암세포처럼 퍼져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홍역을 앓으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 나는 평소와 다른 아침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른 아침 눈이 떠졌다 해도 이내 다시 잠을 청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에 진심이라면 딱 1년만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만큼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마음이 진정성 있게 다가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25년 나는 나에게 또다시 같은 다짐을 해본다. '좋아하는 일로 원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에 진심이라면 그 믿음을 강화시키는 행동을 딱 1년만 제대로 해보자'라고.
그 시작이 아침 시간에 성취감을 쌓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위해 오늘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공평한 시간 안에서 삶은 절대 공평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무엇을 믿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얼마만큼의 행동을 쌓을 것인지에 따라 각자가 서있는 곳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러서야 나는 과거의 나에게 그들이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래.'
간절함은 행동을 낳는다. 반대로 행동은 지금의 내가 무엇에 간절한지를 드러낸다. 사실 우린 누구나 간절하다. 행동하지 않는 건 아직 결단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선택할 건 행동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오늘, 바로 지금 선택하면 된다. 설령 당장 그 선택을 보류할지라도 끝까지 나를 믿어주자. 나에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듯 누구에게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