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미 성공의 방식이 모두 공개되어 있다. 방법도 여러 가지가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는 나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해 꾸준히 적용해 나가면 된다. 그럼에도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아는 것과 익히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학습의 한자어 뜻풀이를 보면 배울 학에 익힐 습이다. 배우고 익힌다는 말은 배움이 있고 익힘이 있다는 말이다. 즉,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나에게 습관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까지가 학습이라는 의미다. 학습의 뜻을 나의 삶에 대입해 보자. 과연 나는 배우고 익히고 있는가? 아니면 배움에 그치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 배움조차 겉핥기로 지나치고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부끄럽지만 나는 착각에 빠져 살았던 날이 많았다. 특히 자기 계발서에 나와있는 내용들은 너무 쉽게 쓰이고 또 응당 그렇게 살아왔던 것들도 많았던 터라 나에겐 그게 시시하게 여겨졌다.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이부자리를 개고,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그걸 책에까지 적어가며 이야기하고 있을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제야 나는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있다. 왜 성공을 말하는 책들이 어김없이 작은 성공 경험을 이야기하는지 알겠다. 과거의 나는 엄밀히 말하면 그 행동들의 가치를 알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관성으로 그 행동을 이어왔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청소년 시절엔 등교가, 직장인일 땐 출근이라는 막강한 강제성의 환경이 존재했기에 나는 자연스레 아침형 인간으로 살았다.
모든 강제성이 사라지고 난 뒤, 해결하지 못해 오랜 시간 붙잡고 있는 삶의 문제들이 마음을 짓누르다 보니 시시하게 여겼던 그 작은 행동들조차 버거워진다는 것을 절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기를 만약 내가 그때 그 작은 성취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새기며 살았더라면 어쩌면 절망의 늪에 빠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더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3년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요즘 나는 다시 아침 시간을 회복하는 중이다. 한 가지 믿음에 확신을 불어넣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을 성공하면 하루를 성공하게 되고 나아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당장 새벽 4시에 기상하는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건 아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7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 보는 중이다.
아침의 고요함을 느끼며 성경을 읽고 난 뒤 아침 일기를 적는다. 아침 일기의 첫 섹션이 오늘의 감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채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감사'는 이루어진 일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즉,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것이 이루어진 일처럼 느껴지게 되며 결국 그 일은 진짜 현실이 된다고 한다. 꼭 이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감사함은 삶을 정화시켜 준다고 믿기에 나는 아침 일기 첫 줄을 기분 좋게 적어 내려 간다.
그다음 책을 꺼내 읽는다. 아직까진 독서모임에서 지정한 도서를 읽는다. 어렵지 않아 속도감 있기 읽기 좋다. 여러 책들의 내용을 소개하는 큐레이팅 도서라서 한 권의 책으로 여러 권의 책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책 속에서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남긴다. 이전에는 책 속에 있는 질문에 답을 달아본 적은 없는데 이번엔 하나하나 답을 적어가며 독서를 하고 있다. 덕분에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독서를 마치면 글을 쓴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아 브런치 글쓰기까지 모두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땐 짧은 메모글을 적는다. 오늘 책에서 발견한 영감을 기록하거나 느꼈던 생각을 적는다. 기록은 언제고 한 편의 글로 확장되고 콘텐츠로 재가공된다.
여기까진 아침의 루틴이라고 한다면 틈이 나는 데로 실행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긍정의 자기 확언이다. 또 한 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확언을 대체 왜 하는지 몰랐다. 그렇게까지 마음이 연약한가 싶은 생각도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론 주문을 외우듯 확언을 하면 진짜 그런 일이 이뤄지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지금 나는 확언의 힘을 믿는다. 마음이 무너져 보니 알겠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그 별것 아닌 한 마디가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삶에 간절해지니 또한 알겠다. 그렇게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육아를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신뢰와 긍정의 언어를 통해 건강하게 자란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내가 나에게 하는 신뢰와 긍정의 언어를 통해 자존감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확언의 힘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비교의 삶을 살아온 우리들에게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삶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것이 이미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능력은 상대적인 것이고 능력이 발휘되는 환경은 지극히 제한적인 세상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능력 없음으로 평가받고, 심한 경우 쓸모없음으로까지 평가 절하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나를 존재만으로 가치 있다고 여겨줄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확언이 필요하다. 마치 숲 속의 한 그루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내가 먼저 인정해줘야 한다. 그것이 쌓이면 확신이 생긴다. 확신을 갖게 되면 두려움이 없는 실행을 반복할 수 있게 된다.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닌 과정에 불과하다.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바라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진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먼저 나의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한다. 나에겐 나를 믿어주는 믿음이 존재하는가? 세상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도 나는 나를 보배로운 존재로 여기고 있는가? 우리가 진짜 회복해야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살면서 경험해야 하는 건 나의 건강한 믿음을 강화시키는 경험이어야 한다.
그것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바로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찮고 시답잖게 보이는 그 작은 행동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코치님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지면 마치 방어막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눈앞의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도 고요한 상태로 머무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진짜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진짜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그런 삶을 꿈꾸며 확언으로 확신하고, 확신으로 꿈을 향한 걸음을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