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브런치에 글을 쓸까 말까?' 직전까지 고민하다 그냥 쓰기로 결정했다. 하루 마감 시간까지 1시간도 남지 않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고민이지만 사실 오늘은 가족 여행 중이다. 가평의 한 펜션으로 놀러 와있는 상황이라 이런 상황에도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는 게 과연 옳은 건가에 대한 내적 갈등이 있었다. 어쨌거나 결론은 그냥 쓰기로 했으니 쓰긴 하는데, 잠시 아이 잘 준비를 하고 오니 시간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초 집중 모드로 글쓰기를 이어가 보겠다.
글을 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소음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물론 카페에서 글을 쓸 때도 많지만 그거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생활 소음은 익숙한 소음이다. 익숙하다는 건 자꾸 마음을 뺏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몰입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글을 쓴다는 건 거센 물살에 역방향으로 거슬러 가는 것과 같이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도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상황을 글에 담는 것일 테다. 이 생각에 이르렀기에 글쓰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상황을 글 속에 담아내면 되겠다는 생각.
사실 처음부터 생활 소음 가운데 글 쓰는 것이 가능했던 건 아니다. 유연함을 체득하기 전까진 꽤나 예민해지기도 했다. 몰입해야 하는데 몰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되고, 그런 상황인걸 알면서도 몰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부딪히다 보니 혼자 잔뜩 날이 서기도 했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글쓰기를 비롯하여 창작 활동이라는 게 어느 특정 시간에만 최적화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대중없이 찾아오는 영감을 놓칠세라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기까지 할 만큼 그 순간을 붙잡기 위해 집중을 하게 된다.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순간을 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생산성과 효율성 모두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좀 더 삶을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창작 활동도 정해진 시간에 최적화되도록 삶을 조정한다는 말을 듣긴 했다. 안타깝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그저 영감님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수밖에.
그래도 한 편 다행인 건 꽤 오랜 시간 글을 써왔더니 아내가 많은 부분 나의 시간을 배려해 준다는 점이다.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에 대해 인정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감사할 이유다. 그렇지 않았음 오늘 같은 날 글을 쓴다고 슬그머니 노트북을 꺼내드는 것만 봐도 난리를 쳤을 테니.
어느덧 생활 소음은 사라졌다. 아이는 잠자리에 들어 나만 혼나 남았다. 이제는 오히려 펜션 안에서 들리는 익숙하지 않은 소음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낯섦에 긴장감 마저 일어난다. 그래도 그 덕분에 글쓰기에는 오히려 몰입이 잘 되는 기분이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오묘한 경험이다. 햇수가 오래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또 익어가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든다. 무에 그렇게 할 말이 많나 싶다가도 스쳐 지나간 한 장면에서도 글쓰기가 시작되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은 그 자체로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경에서 창조주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듯 '말'을 할 수 있는 존재에게 이야기는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보다.
내일은 또 어떤 틈을 노려야 하나. 미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내일 일은 역시 내일 생각하는 게 답이기에 오늘은 이만 하루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