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마음껏 방황 중입니다

by 알레

오랜만에 집에 있는 턴테이블을 꺼냈다. 생각만큼 음질이 좋지 않았던 탓에 신혼 때 장만한 뒤 얼마 사용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LP 음악이 듣고 싶어서 방구석에 있던 녀석을 꺼내 거실로 가져왔다. 한동안 켜보지 않았기에 작동이 될지도 의문이었다. 다행히 LP와 라디오는 멀쩡하다. 아쉬운 건 CD플레이어다. 안 그래도 아이가 보는 책들 중에 CD로 된 오디오 북이 있어 틀어주고 싶었는데, 하필 CD플레이어만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저렴한 아이라 그런지 저음역대가 전혀 없는 가냘픈 소리로 음악을 듣는 내내 살짝 귀가 간지러운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랜만에 꺼내 듣는 추억의 LP 음악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감성을 더해줬다.


이번엔 라디오가 듣고 싶었다. 라디오 키즈로 자랐던 세대인 만큼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주파수를 맞추다 보니 손 끝의 섬세함이 필요했다. 미세한 차이로 클린 한 소리와 잡음을 왔다 갔다 했다. 근데 그것도 잠시. 겨우 주파수를 잡았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또다시 잡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다가가면 잡음이 사라진다. 또다시 일어서면 잡음으로 바뀌길 반복하는 걸 보고 결국 포기했다.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의 나의 상태가 마치 우리 집 턴테이블에 함께 달려있는 라디오 같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라이프 코칭을 받으면서 나에 대한 믿음에 주파수를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내 나를 괴롭히던 잡음이 들리지 않고 진짜 나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제오늘 아무리 튜닝을 해도 잡음만 가득했다. '부러움'에서 시작하여 가장 듣기 싫은 소리였던 '나 따위가'까지 들리는 걸 보면 이번엔 안테나가 완전히 부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훅 꺼지니 컨디션도 안 좋아졌다. 어김없이 허리가 아프고 더불어 두통마저 시작된다. 이럴 땐 안테나를 고치러 전파상에 가야 한다. 나를 잘 아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이면서 같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쭈구리가 되는 순간도 비슷한 점도 많아서 서로를 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나 보다 앞서 이런 과정을 지나간 친구인 만큼 지금은 나를 일깨워주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한참을 통화하면서 무엇이 나를 이토록 쪼그라들게 만들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필 그게 유료 코칭일 줄이야. 사실 이번 달 초에 무료 코칭을 진행해보고 나서 나름 자신감을 얻어 유료 코칭을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때부터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행동 미루기'로 회피했는데 몸에 피로도가 높아지고 하루가 계획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날이 반복되면서 점점 강도가 세졌다. 결국 오랜만에 '부러움'의 싹이 트기 시작하더니 '상한 감정'의 열매가 맺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인생에 잡초도 이런 잡초는 없다. 뿌리가 너무 깊어서 다 뽑히지도 않는 잡초.


집에 앉아있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잡음이 멈추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냥 앉아있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시계 초침 소리는 왜 그렇게 큰 건지. 안 그래도 마음속이 산만해 미치겠는데 초침소리마저 나를 더 산란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럴 땐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게 상책이다. 즐겨가는 집 근처 카페로 향하며 얼굴에 닿는 찬기운을 느껴보았다. 천천히 걸으며 아파트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올려다봤다. 마음이 가라앉을 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고개를 살포시 드는 게 아니라 처 들고 정수리 위의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깨를 펴주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그 순간 긍정적인 기운이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된다.


카페에 앉아 우선 살짝 달달한 음료를 하나 마셨다. 그리고 통화내용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중이다. 통화 덕분에 내가 잘못된 주파수를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묘하게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잘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욕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결정했다. 기존에 계획했던 방식의 유료 코칭은 당분간 보류하는 걸로. 그전에 내가 이 일에 대해 얼마나 가치를 느끼는지 알고 싶어서 커피챗을 더 진행해 볼 생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은 내가 누군가를 코칭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보단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방황의 시간을 토대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게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방황하며 방향을 찾아간다고 생각한다.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 방향을 찾기 위해선 마음껏 방황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주저앉아 생각에만 잠겨봐야 길을 찾을 수 없다. 그건 그저 시뮬레이션일 뿐 실제가 아니다.


나의 코치이자 멘토님도 그렇고 오늘 통화한 친구도 그렇고 이 둘의 공통점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는 돈이 되고 아니고 와 상관없이 진정성 있게 그 가치를 전하는데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이 가장 행복해한다. 흥미로운 건 결국 그 선택이 경제적 보상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삶에 당장 정확한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둘의 방법을 선택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이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그렇다면 그다음 질문은 '나는 사명감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한 번 더 물어보자. 쉽게 답할 수 없을 테지만 깊이 생각하고 곱씹어 보면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게 된다면 그다음엔 마음껏 방황을 시작해 보는 거다.


결국 사람들은 나의 진정성에 공명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