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은 30년이 된 구형 아파트다. 베란다 새시만 봐도 그 오래전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된 새시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걸 보면 연식이 느껴질 정도다. 이 집에서 산지도 벌써 5년째다. 이사 오기 전 집안 구석구석 남겨진 세월의 흔적을 보완하고자 내부 공사를 하고 들어왔다.
당시 예산과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에 따라 공사의 규모를 정했는데 한참 리모델링 소식도 돌고 있어서 베란다 새시는 그 알루미늄 새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아무렴 남향집인데 낮에 해가 들면 밤에도 좀 온기가 이어지겠거니 했다.
오산이었다.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아내와 나는 후회를 한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새시를 새로 할걸 그랬어."
살아보니 왜 요즘 집이 웃풍이 덜한지 알겠다. 지금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신축 아파트에서 2년 정도 거주했다. 그땐 창문을 닫으면 집안이 고요할 만큼 외부 소음도 바람소리도 차단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창문이 열려있는 것처럼 바람이 스미는 게 느껴진다. 밖의 소리도 꽤 잘 들린다.
외부 소음은 그렇다 칠 수 있는데 실내가 춥다고 난방을 내내 돌리자니 그건 감당 못할 일이다. 결국 대안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거나 무릎담요를 덥고 있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잘 때 누우면 얼굴을 살포시 덮는 한기까지 막을 순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방에서 나왔을 때 맞닥뜨리는 서늘함을 피할 방법은 없다.
살면서 꽤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정확히는 결혼 후다. 신혼집도 세입자가 있는 집을 매입했기에 어쩔 수 없이 1년은 바로 옆에서 전세를 살고 1년 뒤에 들어갔다. 아마 그로부터 1년 뒤에는 귀촌 바람이 불어 연고도 없는 경북 울진으로 이사를 갔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서도 딱 1년 만에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서울. 그것도 잠시 머물고 다시 김포에 갔다가 지금의 집에 정착했다.
여러 번의 이사를 경험하며 여러 집을 살아봤다. 지금 집은 대체로 마음에 드는 집이긴 하다. 직전에 신축 아파트에 살았을 땐 처음엔 신축이라는 기대감에 젖었지만 살아보니 그리 정이 가질 않았다. 좋았던 점이라곤 엘리베이터로 연결되는 지하주차장이 전부다. 지상 공원의 나무들도 아직 자리를 잡기 전이라 그런지 꽤 오래 몸살을 앓았던 것 같다.
비록 30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는 지금 집은 편리함은 덜할지 몰라도 정겨움이 물씬 풍겼다. 오랜만에 사람 냄새나는 동네에 온 기분이었다. 겨울철 한기는 동네가 품고 있는 예스러운 온기에 비하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냥 겨울 한 철 한기를 느끼면 그만이다. 어차피 지나가는 거니까.
앞으로 얼마나 이 동네에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리모델링 관련 건축 심의를 통과했다는 거대한 현수막이 아파트 외벽에 붙은 걸 보았다. 호재는 호재이겠지만 그 말인즉슨 더 이상 예스러움이 자아내는 온기는 지속되지 않을 거란 소리이기도 하니 결국 우리도 또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만큼 한눈에 정이 가는 동네를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찾다 보면 따스움을 간직한 우리 동네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뭐 그렇다고 리모델링이 진짜로 시작되려면 아직도 한참이니 차차 생각해 보는 걸로 해야겠다. 그나저나 이 참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