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삶을 어떤 삶일까?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당신이 평소에 타인을 더 많이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이 질문의 답이 요원하게 느껴질 것이다. '배려'가 미덕이고 좋은 매너인 건 맞지만 그 끝에 피로감과 공허함마저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진심을 되물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나의 진심은 그 순간 타인을 배려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40년이 넘게 살면서 이제야 느끼는 건 생각보다 많은 날을 오직 나만을 위해 보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관계 속에 이끌려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살아가다 보니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순간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어떤 날엔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낼 때도 있었다.
퇴사 후 줄곧 '나다운 삶'을 추구하며 살다 보니 그동안 나를 너무 몰랐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제야 알게 된 건 '외로움'이라는 녀석은 나와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 게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을 때 안정감을 느껴버릇했으니 소속감이 사라진 뒤에 밀려드는 불안감은 외로움을 자극시켰다. 오죽하면 SNS에서, 커뮤니티 채팅방에서 그 외로움을 달래려 했을까 싶다.
매번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안다. 겉으로 드러난 나의 활달함에는 외로움을 다룰 줄 몰라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서툰 나의 모습도 있었다는 것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사람들 중에 몇이나 자기감정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 그만큼 내 감정을 아는 게 쉽진 않다. 보이는 것에 몰두해 살아가다 보니 보이지 않는 감정을 돌볼 새도 없는 게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요즘의 나는 순간순간의 선택에 집중하게 되는데 선택의 이면엔 감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감정을 적절하게 감추는 것이 성숙한 인간인양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점점 감정에 무뎌져 어느 순간부터는 내 선택이 아닌 타인의 선택을 수용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았다. 만약 일상에 '아무거나'라는 말의 빈도가 높아졌다면 잠시 멈춰 내 감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미 당신은 감정에 무뎌져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예정대로라면 오후에 코칭을 받으러 갔어야 했다. 그러나 어제 코치님께 오늘은 좀 쉬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다. 피로도가 높아지니 우울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주는 유독 루틴을 지키지 못해 해야 할 일들이 밀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기에 흐름을 끊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예정된 일정을 지키는 것을 더 우선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고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한 뒤로 진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빈도가 높아졌음을 느낀다. 오늘은 아이 등원 이후 카페에 나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좋아하는 시간으로 나를 채우는 중이다. 덕분에 그간 밀린 것들도 처리했다.
문득 '나다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왜 이렇게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잘못된 정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살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다운 삶을 선택했을 때 이뤄질 수 있는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경우 그 결과에 이르지 못할 때마다 더욱 결과에 매달리며 애먼 나를 채찍질하게 될 수도 있다. 또는 자칫 엄한 곳에서 나다움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나다운 삶'은 '나를 위한 선택을 쌓아가는 여정'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내 마음에 충만함을 채워주는 선택, 나를 위로해 주는 자기 연민의 선택, 내 감정에 집중하며 나의 마음을 살뜰히 살피는 선택. 이제는 그것들을 쌓아가는 시간이 '나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니 더 이상 아득하지 않다. 오늘 충분히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어느덧 한 주가 끝나고 주말이 시작되는 지점을 향해 날이 저물고 있다. 바삐 살아가느라 애쓴 나의 마음을 살피며 나를 위한 선택을 한 두 가지라도 해보길 바라본다. 감정은 내 마음의 속삭임이고 때론 살기 위한 외침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살뜰히 챙겨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내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결국 나는 나로 살아갈 때 가장 편안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