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마주 보는 시간의 기록

by 알레

마음속이 흙탕물이 된 기분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며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흙을 한데 섞어 버리듯 그동안 묻어두고 살았던 감정들이 한바탕 올라온 느낌이다. 이 불편한 감정은 대체 뭘까? 원인을 알고 싶어 곰곰이 생각을 해보지만 쉽게 닿지 않아 더 답답하기만 하다.


글쓰기도 독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요즘이다. 조금은 억지로 루틴을 반복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별 거 아니야'라고 마음을 가라앉혀도 보지만 이놈의 미꾸라지는 괜찮아질 만하면 계속 물살을 일으킨다.


최근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한 뒤 이런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 머릿속에는 많은 말들이 떠돌아다닌다. '이런 증상이 지속된다는 건 직면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거야', '굳이 긁어 부스럼을 일으켜야만 하는 건 아니야', '꼭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럼에도 마음 편히 놓지 못하는 걸 보면 나 또한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절벽에서 뛰어내려야만 날개가 있는 걸 알 수 있는 법이라는 비유로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또 어떤 누군가는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하나씩 천천히 가라고 한다. 내면의 쓴 뿌리를 제거하는 문제는 차던지 뜨겁던지 해야만 하는 문제인 건가?


극약처방을 내리는 말을 들을 땐 궁지에 몰리는 기분이 들어 거센 저항감이 올라오지만 덕분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의 뿌리를 인지하게 된다. 반면 천천히 가라는 쪽의 말을 들을 때면 안도감과 함께 저항감 없이 감정의 문이 열림을 경험하지만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지레 시작부터 지치기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틀린 건 없다는 걸 안다. 그저 선택하기 나름이고 선택한 나를 존중하면 그만이다. 또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럼에도 내내 고민하게 되는 건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나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


안정적인 벌이가 사라지니 비로소 알겠다. 내가 나를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인정해 주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지인이 공유해 준 책 속의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어떤 역할이 아닌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이 그 역할의 전부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왜 갓난아이에게 그게 되는데 40대의 나에겐 그게 이렇게 어려운 걸까. 괜스레 오늘의 나를 만든 과거의 시간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혹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아이에게 같은 식의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감정을 들여다본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거센 파도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넘어서 보면 어떤 세상을 만날지 두려우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여정.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고, 어쩌면 그나마 유지해 오던 안정감마저 흔들어 버릴지 모르는, 그래서 왜 굳이 그 선택을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생겨나는 게 자연스러운 여정. 그럼에도 구태여 그 문을 열고 싶다는 간절함이 날로 달로 커지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


다분히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 시간을 통해 변화를 일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 시절의 경험이 앞으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헤아리는데 밑거름이 될 거라 믿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