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하루는 간다

by 알레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그저 하루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날도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꼬이는 날도 있는가 하면 홍해가 갈라지듯 내가 가는 길마다 신호가 착착착 바뀌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날도 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하루는 간다. 그래서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고 지나간 하루를 지나치게 반추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는 딱히 '징크스'라고 할만한 게 없다. 그도 그럴만한 게 '징크스'라는 건 우연히 반복되는 상황에 굳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마치 그 상황이 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상관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로 대하다 보면 징크스라는 게 생길 리가 만무하다.


솔직히 나는 의미 부여를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속된 말로 '의미충'이라고 불릴 만큼 좋아한다. 그럼에도 미신 같은 믿음으로 삶을 해석하는 건 지양한다. 그래서 사주팔자도 믿지 않고 타로나 점은 더더욱 신뢰하지 않는다.


삶을 너그럽게 살아가기 위해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태도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삶에 대해 과한 태도로 임하면 삶에 매이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또 모자라게 굴면 삶이 마땅히 제공해 주는 풍요를 누리지 못한다. 아주 완벽할 만큼의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는 게 어디 쉽겠냐만은, 마치 곡예사가 외줄 타기를 하며 기다란 봉으로 균형을 잡든 그렇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다 보면 자기만의 정도를 알게 된다.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이면 조바심이 난다. 인생에 조바심을 내면 자꾸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자칫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롤모델로 삼는 사람이라던가, 아니면 존경할 만한 대상의 말에는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삶의 정답이 아니라는 태도는 필요하다. 그들은 그저 레퍼런스일 뿐 나는 나다.


나에겐 퇴사 후 삶의 레퍼런스가 되는 사람이 있다. 어딘가 성향도 비슷하고 추구하는 방향의 본질도 닮아서 더욱 그의 걸어가는 길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친밀감도 있어 그간 고민이 생길 때면 속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사람이 살짝 불편해졌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 내 삶을 그의 삶에 동기화시키려고 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계획을 실천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영향력을 나누는 것을 내심 부러워했다. 그래서 나도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린 다른 사람인데 어떻게 삶을 동기화할 수 있을까. 이미 이 생각부터 잘 못 되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또 다른 지인은 나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 줬다. 나와 그는 완전히 다른데, 왜 그를 닮으려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그땐 에둘러 설명했지만 내심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이제는 나와 그는 완전 다른 사람이란 걸 인정한다. 그리고 내 삶이 그의 삶과 같을 수 없음을 또한 인정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분 그에게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두 주 정도 혼자만의 거리 두기를 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치 유착된 부분을 수술을 통해 떼어내 정상 기능을 하게 만들듯 무의식 중에 그에게 동기화 되려 했던 나의 불완전한 부분의 수술을 마쳤다는 의미다.


밤이 깊어간다. 타인의 삶을 의식해 내 삶의 여유를 잃어버렸던 잠시 동안의 날들에서 제자리로 돌아와 가족과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속초에서 맞이하는 밤은 서울에서의 밤과 다르게 더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것 같다. 덕분에 밤하늘이 빛난다. 보이지 않던 별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삶은 빛을 잃어버렸나 싶은 순간에 어둠을 드리우는 건 아닐까? 자기만의 빛을 보라고.


어쨌든 누구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지나간다. 그러니 내 삶을 살자.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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