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단단하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간혹 인생의 내공이 깊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거나 어쩐지 보이는 모습이 평온해 보이고, 성숙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단단해 보인다'라고 표현한다. 사람 속은 알 도리가 없으니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대개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마음이 단단하다는 것이 비단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어 본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우라와는 또 다를 것이다. 물론 어려움과 아픔을 겪어본 사람의 경우 마음 그릇의 깊이와 너비가 더 깊고 클 수는 있겠지만 꼭 비례하는 건 아니기에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 대체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3가지 기준을 적어 보았다. 첫째, 자기만의 기준이 있을 것. 둘째,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일 것. 셋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 써놓고 보니 참 어려워 보인다. 이미 나부터 '땡! 탈락'이다.
솔직히 3가지 기준만 보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잘 없다. 첫째, 둘째는 그렇다 쳐도 세 번째가 영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성직자여도 자기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기준을 조금 낮춰 보기로 했다. 첫째, 오늘 하루 나의 어떤 선택도 기꺼이 존중해 줄 수 있는 태도. 둘째, 나와의 약속을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 셋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흠, 써놓고 보니 이것도 그다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정도가 나에겐 적절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자기 존중. 내 존재의 중함을 내가 인정해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완벽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내가 나를 가볍게 여기지는 말자는 소리다.
아빠가 되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놀이를 가서 튜브를 타고 놀 때 아들은 제 키보다 깊은 물에 혼자 떠있으면 무서워한다. 아빠나 엄마가 옆에 함께 있을 때만 아이는 세상 두려움 없이 까불기 시작한다.
자기 존중은 아이의 믿는 구석과 같다. 내가 나를 딛고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두려움을 이겨낼 자신감이 되고 자존감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감이 충만한다 한들 삶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그래서 한 가지가 더 필요한데, 연단의 시간이다.
연단의 시간은 지나고 돌아보면 숭고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처절하다. 그래서 아프고 무너질 때도 있다. 이럴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이 나를 살피는 마음이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음을 믿어주는 마음이다.
타인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타인의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이기에 사실상 기준이 없다. 연단의 시간은 곧 내 속의 불순물을 떼어내고 본연의 나로 나다운 빛을 발하게 해주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과정을 지나고 나면 보다 나다운 기준이 세워진다.
단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오늘의 시련을 기꺼이 감내하자. 소용돌이치듯 올라오는 감정이 느껴진다면 잠시 머물더라도 ‘올게 왔구나’하는 태도로 흘려보내자. 흘러가는 감정은 고이지 않는 법이다. 굳이 붙잡지 않으면 머물지도 않는 게 또한 감정이다.
굳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나다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면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만약 주변의 누군가가 나에게 ‘단단한 사람’이라 말해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자! 당신은 잘해나가고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