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와 함께 서촌 예술가 마을 도슨트 투어 일정이 있던 날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도록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마쳤다. 아이를 무사히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 뒤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출발했다. 아내랑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까지 나가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주로 혼자 모임을 다닐 때가 많기도 하거니와 그마저도 주로 강남 부근에서 모이니 경복궁 근처에는 딱히 갈 일이 없었다.
아침에 아주 살짝 빗방울이 떨어졌는데 다행히 금방 그쳤다. 집결지는 통의동마을마당. 전부터 서촌에 가보고 싶었는데 잠깐 찍고 가거나 차를 타고 지나간 적은 있어도 제대로 골목을 거닐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마침 그리 덥지도 않고 바람이 시원해서 걷기도 딱 좋은 날이었다. 미세먼지만 빼고.
서촌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이유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인들이 살았던 곳이 서촌이었는데, 후기로 접어들며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돈이 많아진 이들이 예술가들에게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하나 둘 예술가들이 서촌지역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곁다리로 북촌에는 갤러리가 많이 형성되어 있는데, 역시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고관대작들이 가지고 있던 고가품들을 하나 둘 매각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북촌부터 인사동까지 갤러리나 오래된 자기를 매매하는 상점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이라고 했다.
일전에 경복궁 도슨트 투어를 가본 적이 있는데 역사 해설사와 함께 다니면 역사의 한 자락을 거니는 기분이 들어 무척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같은 마음이었다.
집결지에서는 서촌과 북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보안여관에서 시작하여 골목을 따라 아트 갤러리들도 가보고 갤러리 지하에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 집터도 보았다. 노벨 문학상 이후 더 핫해졌다는 한강 작가님의 책방, 오늘과 추사 김정희 집터로 알려진 백송터도 둘러보고, 대림 미술관 등 길 따라 골목골목 이어지는 예술의 혼을 따라가 보았다.
길 건너 자하문로에 위치한 작가 이상의 집을 지나 예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이상범 가옥을 둘러봤다. 이후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 중인 박노수 화가의 가옥 앞에서 설명을 듣는데 이곳은 사실 친일파 중의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집이었다는 말에 참 역사의 두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집은 참 예뻤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면서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터도 보고 수성동 계곡까지 이르러서야 오늘의 투어가 끝이 났다. 참! 수성동 계곡이 군사정권시절 옥인 시범아파트 자리였다는 것에 정말 깜짝 놀랐다. 솔직히 욕이 나왔다. 대체 이런 아름다운 계곡과 인왕산 자락의 터를 아파트를 짓겠다고 덮어버렸다는 것에서 인간의 탐욕을 보는 듯했다. 지금은 그 쓰디쓴 역사를 기억하고자 철거된 아주 일부의 터를 한쪽에 남겨 두었다. 가서 봤는데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뿐이다.
투어가 끝나고 허기진 배를 달래며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된 거리를 걷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거리가 지금은 소위 핫 플레이스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식당과 카페, 갤러리, 편집숍 등으로 채워져 있는데 만약 예스러움을 좀 더 보존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물론 안전의 문제도 있었을 테지만 그보단 개발의 호재가 절대 옛것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군데군데 보존되어 있는 역사를 머금은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새삼 오늘의 삶에 감사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역사가 된다. 대부분 잊히겠지만 서촌의 군데군데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면 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에 나는 이미 사라진 뒤니 그게 또 무슨 의미 인가 하는 양가감정이 교차했다. 그래서 살아있음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역사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늘을 소중히 살면 그게 곧 역사가 된다는 것을 되새긴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간혹 뉴스에서 전해지는 어린이집 사고 소식, 한순간에 벌어지는 어린아이들의 황망한 사고 소식, 그런가 하면 스무 살 청년이 되어 이젠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는데 별안간 전해진 사고 소식등 세상엔 생과 사가 함께 공존한다.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
죽음을 떠올리니 지금 내 아이가 어쨌든 5년째 살아가고 있음이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40년이 넘도록 살아가고 있음이 또한 감사했다. 내 부모님이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계심에 감사했다. 아니 이것들은 모두 어쩌면 행운이고 기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거리를 걸어서 그런가 유달리 나의 오늘에 너그러워진다. 아등바등했던 마음이 유독 느껴지지 않는 하루였다. 앞으로도 종종 시간을 내어 서울 시내 곳곳에 있는 역사를 찾아다녀봐야겠다. 고전 문학에서 삶의 지혜를 얻듯 남겨진 발자취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