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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입니까? 기분입니까?

-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by 알레

"젊은 친구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야지! 열정! 열정! 열정!"

정말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유난히 텐션이 높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주변에서는 그 사람을 보고 '열정적인 사람이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런가 하면 바람 한 점도 불 것 같지 않는 듯 잔잔한 호수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는 '열정이 없어' 또는 '열정이 식었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체 열정이 무엇이기에 온도차로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cullan-smith-1UAI5_PQg_E-unsplash.jpeg 대체로 열정이라고 하면 뜨겁게 타오르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듯하다





지난날의 나 조차도 이러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도 연차가 지나갈수록 업무가 재미없어지거나 권태로워질 때 스스로 열정이 식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열정이 식은 이유를 '성과 보상에 대한 불만족스러움, 업무 자체에 대한 지루함, 필요 외의 잡무들, 또는 정말 하루 업무가 거의 없음' 등과 같이 외재적 요인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유난히 충격을 많이 받는다. 소위 말하는 '뼈 때리는 한 마디'가 많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열정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보고 난 후 그동안 내가, 그리고 내 주변의 대부분이 의미했던 열정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열정이란.jpeg 책_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강민호 저


저자의 정의대로라면 열정은 온도차로 표현될 수 있는 속성의 것이 애당초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표현했던 개념의 열정의 사실 열정이 아니라 기분이었다. 주변의 동료들 또는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소위 열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흥분상태이거나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액션이 큰 사람들이지 않는가. 또는 초반 러시가 강해서 프로젝트 초반에 매우 저돌적인 자세로 임하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정말 목소리만 큰 사람일 수도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대체로 이런 유의 사람들에게 특히 상사들은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그러지 못한 직원들을 향해 눈을 흘기던가 혀를 끌끌 차던가 하는 식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문제는 그래서 그들이 마무리를 잘했는가 라는 것이다. 여차저차 마무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는 순식간에 타버리고 재가 되거나 아니면 내내 자기만 고생한다는 듯 억울한 얼굴을 한 채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무능을 덮어버리려 연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기한 건 그런 사람들치고 말 못 하는 사람은 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기가 막히게 변론해내고 유유히 책임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결국 나름 일을 꼼꼼하게 한다는 직원에게 그 업무는 가중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된 해당 직원은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초반 러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극히 단편적인 경험이지만 기분이 도취되어 업무에 임하는 사람들은 결국 데드라인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격이다. 한껏 고취되었던 기분이 가라앉아가면서 점점 해당 업무에 대한 관심과 애정, 열심 모든 것이 사라져 감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것처럼 오만상으로 그 심정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보고 날 직전에 야근을 하며 자신이 매우 고생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열정은, 다시 이야기 하지만, 온도차로 표현될 수 있는 속성의 것이 아니다. 열정은 그것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고 일정량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며 그것이 장기간 계속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꾸준히 진행하는 사람, 설령 프로젝트의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이 열정적인 사람이다.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으로서 자기 계발에 열정이 있다고 한다면 가령 수년 동안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아침시간에 정해놓은 루틴을 소화하고 있다던가, 매일 독서를 하며 독서노트를 작성하고 있다던가, 또는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물적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평소 무엇에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나는 어떤 것에 진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는가. 직장인이라면 나는 내 업무에 대해, 또는 나의 직장 생활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에 대해 과거의 나와 같이 외재적 요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퇴사 후 가만히 나의 직장 생활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결론은 후회가 남는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인생의 8 ~ 9년의 긴 시간을 주체적으로 보내지 않았음에 대하여 말이다.


언제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주변에서도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물렀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볼수록 나는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는데 한 발 더 나가는 것이 어쩐지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이라고 여겼던 탓에 제자리에 멈춰서는 선택을 했었다.


이제와 이런 생각들이 밀려오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덕분에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요즘이지만 하루를 그 어느 때보다 꽉 채워서 살아가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오직 나를 위해서 선택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나는 내 삶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 같다. 꾸준하게 하루에 정해놓은 분량을 실천하고 그것을 기록하며 또 회고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족한 것은 채워갈 방법을 고민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다각도로 접근해 보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게 된다. 남은 숙제는 실력을 쌓는 것이다. 지속된 열정이 실력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사실은 장기간 지속된 기분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 아직도 주먹 불끈 쥐면서 열정! 열정! 열정! 을 외치고 있지는 않는가?

혹 순간 확 타오르고 이내 재가 되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기분에 속지 말자. 그리고 잊지 말자. 진짜 열정은 온도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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