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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에 퇴사 후 가까스로 살고 있습니다

- 어쩌면 다음 브런치 북 제목이 될지도 모를 타이틀

by 알레

[마흔 살에 퇴사 후 가까스로 살고 있습니다]는 다음 브런치 북 제목으로 메모장에 적어둔 타이틀이다. 그동안 퇴사와 관련된 브런치 북을 두권 발행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toryofale

https://brunch.co.kr/brunchbook/resignation40


지난 두 편을 기록할 때는 대체적으로 외부 요인들의 작용에 따른 반작용에 기인한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물론 두 번째 브런치 북인 [마흔 살에 퇴사합니다]를 쓸 때는 좀 더 내면적인 부분에 집중해보았지만 여전히 재직 중이었기에 외부 환경적 요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이제는 퇴사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외적 요인이 없어진 지금, 이제 나의 모든 질문은 오롯이 나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답을 해보는 시간은 그리 편치 만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최근 본 유튜브 콘텐츠에서 20대 CEO의 인터뷰를 보았다. 자신을 소개하기를 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수능은 7등급이었다고 한다. 지방대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를 나왔지만 평소 연예인 덕질을 좋아하던 자신은 미디어와 관련된 분야면 대학의 네임밸류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시절과 다르게 대학 시절에는 4년 내내 과탑을 유지하고 전 학년 장학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SBS에 계약직으로 입사하여 근무하면서 재미난 경험을 하게 되는데, 20년 차 넘은 PD님이 20대인 자신을 불러 콘텐츠가 재미있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젊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트렌드를 주도하는 세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후 창업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성공 방정식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걸어간 것처럼 보이는 이 대표님은 어떤 점이 달랐던 것일까? 인터뷰 내용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었다.



저는 모든 순간을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이 시간 대비 제일 최고치의 기회랑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걸 챙기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부분에서 멈칫하게 된 이유는 나는 모든 순간을 기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상위권을 유지하던 고교시절, 적당히 상위권 대학을 나왔다. 대학에서도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대학원에서도 무난한 학생이었지만 잘하거나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나의 실력에 대한 성찰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지점에 머물러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기회로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굳이 삶의 모든 순간을 기회로 여기지 않아도 살아진다.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없이 적당한 지점을 잘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이 없다는 게 함정이다.


만약 내가 그 시간에 어떤 기회를 찾아내기 위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더라면 지금쯤 최소 한 두 번의 유의미한 성공 또는 실패의 기록이 남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시도해본 경험 자산이라도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장 많이 반성하게 되는 것은 부끄럽지만 나에게는 참 부질없는 체면이라는 것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이래서 성경에서도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다.






중간 지점은 언제나 양쪽의 장단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적당히 또라이면서 적당히 성실하다. 돌이켜 보면 직장에서 나의 모습은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주도적으로 나서지도 못했고 굳이 미련할 정도로 성실했다. 그 가운데 비전을 찾고자 했으니 찾아질 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몸담았던 회사의 시스템 자체도 그것을 친절하게 제공해주는 조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만약에 지금의 내가 당시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가 처해있는 현실의 어떤 고민들, 환경적인 답답함들, 그리고 쓸데없는 체면과 자존심 따위 다 내려놓고 일단 전적으로 뛰어들어봐.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을 쌓아갔으면 좋겠어"라고.


퇴사 후 무엇이라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방구석에 앉아 고민만 많다. 누군가에게 유상으로 나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납득시킬 수 있을만한 사회적 증거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지난 직장 생활에서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증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이제야 그것을 보게 되었고 돌이켜 가장 후회가 남는 점이 되었다.


두 번째 스무 살을 살아가는 지금이라도 지난 후회를 딛고 하나씩 차곡차곡 사회적 증거를 쌓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제는 시간도 체력도, 그리고 육아라는 환경까지 더해, 이전에 비해서 대부분의 조건이 조금은 불리한 상황이 되었지만 간절함의 크기는 몇 배로 커졌다. 그래서 하루하루에 주어진 삶의 틈바구니에 최대치의 효율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리고 내가 놓쳤던 삶의 태도에 대한 기록을 계속 남기며 혹여라도 나의 지난날을 답습하려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삶의 모든 문제가 꼭 환경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일부는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부디 일찍 깨닫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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