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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아닌 사람과 상황에 미련을 두지 말자

by 알레

기나긴 연휴가 끝났다. 그리고 맞이한 월요일. 딱히 바쁘게 보내지도 않은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온다. 어쩌면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다. 비 내리는 흐린 날씨는 차분해지는 걸 넘어 가라앉히기 딱이다.


아이 등원 후 부지런히 처리할 일을 하나 해치우고 영화를 한 편 봤다. 참여하고 있는 챌린지 인증 마감일이 오늘까지 인 것도 있고 이런 날엔 잔잔한 영화 한 편이 어울리기도 하다. 셀린 송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영화인데 초등학생 시절 서로 좋아했던 친구가 20년이 지나 다시 만나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시종일관 잔잔하게만 흘러가는 영화인지라 지루할 수도 있지만, 배우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감정이 올라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스토리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호감도를 갖게 된 건 여주인공의 역할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연극 시나리오 작가이긴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괜스레 작가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호감이 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연에 대해 곱씹었다. 첫사랑처럼 지나간 인연을 다시 마주했을 때 일순간 일렁이는 설렘이 현실일 수 없듯 과거의 인연이 현재를 붙잡고 있다면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 함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인연을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깊고 각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살아보니 깨닫는 건 오랜 인연이 좋은 인연은 아니라는 것이고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기에 관계를 정리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관계가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해보고 나니 이후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을 때에만 유효하다. 양방향이 일방으로 변하면 더 이상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상대는 진즉 마음을 정리했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좋아했던 사이', '이민'이라는 특별한 장치가 둘 사이에 정리되지 못한 감정을 부추기지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새로운 시작이 아닌 각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오랜 인연을 정리한다.


어떤 인연이 좋은 인연일까? 영화를 통해 느낀 건 미련이 아닌 인정을, 과거에 머무름이 아닌 나아감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의 마음은 슬퍼할지 모르지만 눈물로 털어내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이지 않을까.


마찬가지다. 우리네 삶도 미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가 있다면 털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삶을 살아줄 수 없고 서로의 감정을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과 내 감정을 오롯이 감당하는 삶이야 말로 가장 나다운 삶의 여정이다.


최근 인생의 한 자락에서 또 한 번 인연이 정리되는 시점을 맞이했다. 마음은 편치 않지만 그러나 구태여 붙잡고 싶지는 않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서로의 삶에서 교집합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일 뿐이고 이는 또 다른 교집합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삶. 지금 내가 집중하는 건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군더더기 같은 감정과 인연에 현재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 삶은 유한하다. 유한한 삶의 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이 소중한 것이고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인연이 아닌 사람에 대해 담아두고 머뭇거리다 응어리로 남기지 말고 미련 없이 털어내자. 그리고 나의 내일을 향한 징검다리로 오늘을 살자.


나다운 삶에 집중하면 좋은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걸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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