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때론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생각을 되뇌보지만 아무리 곱씹고 또 애써 인과를 찾아보려 해도 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왜 하필 나지?', '왜 하필 나였을까?' 답 없는 질문만 맴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싶어 잠을 청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다. 애써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아도 매한가지다. 결국 괜찮지 않았던 거다. 시원하게 욕을 내뱉으며 분을 내던, 아니면 억울하다고 소리치던가, 그것도 아니면 한바탕 울고 싶은 마음. 사실 마음은 그걸 하고 싶은 건데 이성은 끊임없이 괜찮다고, 별것 아니라고 애써 마음의 외침을 누른다.
그런데 아무리 이성이 마음을 가로막아도 마음을 이길 수는 없다. 결국 마음은 어느 한순간 그 감정을 터뜨리고 만다. 안 그러면 저가 죽겠으니까.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상관없이 억울한 상황에 놓였을 때 처음엔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3년이 걸리고, 그다음은 3개월, 그다음은 3주, 3시간, 3분이 걸린다고 한다. 가끔 힘든 상황에도 초연한 사람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은 그 상황쯤은 별 것 아닐 만큼 더 큰 상황을 겪어봤거나 아니면 적어도 3년, 3개월, 3주, 3시간의 여정을 이미 거친 심후한 내공의 소유자였을 것 같다.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무안하고 억울한 상황을 겪어보니 알겠다. 평소 좋은 얼굴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꼭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즉, 타인에게 베푸는 호의도 결국 자신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기 위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반대로 자신의 평판이 실추될 위기 상황이 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흠집 내어 자신을 지키는 게 인간이란 소리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또 한 편으론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나 역시 그 '누구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기에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한 조직에서의 역할과 지위를 고려할 때 한 참 벗어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러우면서 동시에 밑바닥을 드러낸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생은 왜 꼭 실수와 시련을 통해 배움을 얻게 되는 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내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뒤따라온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결국 단순히 나이 듦이 아닌 마음의 체급을 늘려가는 과정이다. 그만큼 고통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참 여러모로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지혜를 깨닫는다. 삶에는 버릴 경험이 없다고 믿는다.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지나면 그 속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혜가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의 경험도 훗날 더 다양한 사람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