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깊게 들어간 삶이 있다면 때론 멀어질 필요가 있다. 너무 깊어지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걸 알았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삶은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하기에 깊어지는 만큼 구속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할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중력장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히 인지해야만 한다.
특히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일수록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커뮤니티나 모임, 조직 상관없이 구성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중심에 서있게 된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 자리에 서는 순간 그곳에서 멀어지는 선택을 하기 위해선 꽤 많은 에너지가 요구된다.
한 번 주변에 내가 바라는 이상향의 삶을 살고 있는 대상들을 잘 살펴보자. 나의 경우엔 삶의 자유도가 높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런 대상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영역을 고수한다는 점이었다. 연결은 느슨하게 유지하며 자기 삶의 방향키를 타인이나 조직에 넘기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나를 잘 알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선명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자 하는 건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주변에서 '좋은 사람 또는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치고 냉정하게 관계를 끊어내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끊어내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거절을 명확하게 하기조차 쉽지 않다. 40여 년을 살며 경험한 바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땐 정말 좋은 인격과 성품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거절을 잘 안 하는 사람인 측면도 한 몫했다.
물론 조직에 헌신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언제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삶을 확장해 나가고 싶다면 깊어질 줄 아는 만큼 끊어낼 줄도 알아야만 한다. 자칫 깊게 관여한 일들이 여러 개가 돼버릴 수도 있다.
최근 나는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사랑했던 커뮤니티의 리더가 바뀌고 난 뒤 받게 된 상처는 사랑했던 만큼 커다란 낙차를 보였다. 그래서 아팠고, 그래서 잠시 주저앉았다. 주변에선 그럼에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래야 하나?' 여전히 고민된다. 그럼에도 점점 마음은 '새로움'을 향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이번 일이 나에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에겐 분명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만약 나에게 살아갈 날이 딱 1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되뇌면 미안함도 일순간이라는 생각이 선명해진다.
힘든 선택의 기로에 설 때면 나는 이 생각을 되새긴다. '세상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이것은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삶에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 있고 조력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누구도 예외 없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마음이 무너질 정도로 힘든 상황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가장 명료하다. 그리고 '나'만 생각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삶에 오르 내림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왕이면 올라가는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내려갈 때의 쓰림과 고통이 없이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게 또 인생이라는 걸 배웠다.
털어낼 건 털어내고 다시 흐트러진 삶을 재정비해야겠다. 삶이 이렇든 저렇든 내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이니, 이제 그만 낙심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보려 한다. 1분 1초가 아까운 삶을 '무엇 무엇 때문에'로 낭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