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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요트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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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Mar 23. 2020

삼천포 코너-배에 오르면 돌변하는 것들

세일링 용어

집에서 걸레질할 때 쓰는 것과 같은 양동이죠? 이탈리아에서는 '쎄키오(secchio)'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 쎄키오가 배에 오르는 순간 갑자기 이름이 '불리올로(bugliolo)'로 변합니다. 처음엔 배에서 쓰는 양동이는 뭐 다른 기능이나 특수 부속 같은 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불리올로가 깨지니 그냥 슈퍼에서 플라스틱 쎄키오를 사더군요. 앗, 그런데 이 슈퍼에서 산 쎄키오가 갱웨이를 건너 승선하는 순간 또다시 불리올로가 되었습니다!


이 불리올로는 항해에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장비'입니다. 바닷물로 설거지할 물을 긷기도 하고 뱃멀미하는 친구의 멀미를 받기도 하고요..... (그걸로 또 물을 길어서 파스타를 끓이기도 하지요)

마리나에 도착했습니다. 뭘 좀 빨러 세제와 함께 불리올로를 들고 내리는 순간 녀석은 다시 쎄키오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뒤통수 조심해라


영어 사용자들은 배 안에 있는 화장실을 toilet, bathroom, lavatory 등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30mt 세일링 요트의 인테리어 레이아웃입니다. 

뭐 선실이 cabin이고 주방이 galley인 것 까지는 비행기를 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crew mess는 무엇이며 day head는 또 무엇일까요? 크루들이 난장판을 만들라는 곳인가요? 대낮에 머리를 맞대라는 곳일까요?


크루 메스는 선주의 손님들과 선원들의 공간이 분리된 경우 선원들이 식사를 하고 쉬는 공간을 일컫습니다.  

전형적인 크루 메스, 사진의 계단처럼 선원들 전용 통로가 있고 Lower Deck에 위치.

그럼 데이헤드는요? ..아까 6번이었죠?

그림으로만 딱 봐도 화장실이죠? 게스트 캐빈들에 딸린 화장실들은 guest head, 선주 캐빈에 딸린 화장실은 master head 혹은 owner's head라고 한답니다(선주의 머리라니 더더욱 웃기네요). 데이헤드는 보통 요트의 공동 공간(콕핏이나 살룬 등)에서 잠깐 볼일 볼 때 가는 공용 화장실이에요. 낮에 주로 쓴다고 데이헤드라고 합니다. 근데 왜 화장실을 머리라고 하는 거죠? 


승객이 많은 경우 선실은 여러 층으로 나누어지게 마련이죠. 예나 지금이나 물에서 먼 위층은 고급 승객, 아래층일수록 하급 승객들의 선실이 차지했죠. 게다가 선체에 달린 창문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선실에서 유일하게 외부로 뚫린 구멍이에요. 뱃멀미가 날 때 해소법이 정지된 수평선을 보는 것인데 이 동그란 창문- 오블로(Oblo)라고 해요-을 통해서만 가능하죠.

아래는 비교적 현대의(?) 배 사진이긴 하지만 오블로가 많아서 골랐어요. 1900년 초반 진수된 대서양 횡단용 여객선입니다. 각 층마다 선실이 있고 선실마다 오블로가 있었겠네요. 

더 옛날의 배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어요. 1등석 선실에도 3등석 선실에도 공평하게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까 그 불리올로를 썼냐고요? 빙고. 요강 비슷한 게 있었나 봐요. 그리고 볼일을 본 후에는 오블로를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냈죠. 네, 바다에 부어 버렸어요.


문제는 아래쪽 데크 선실의 누군가가 뱃멀미를 하느라 오블로에 머리를 빼고 바다에 게워내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 위쪽에서 불리올로를 비워야 할 때겠죠. 그래서 내용물을 바다에 쏟기 전에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Head!"


머리 집어넣으란 얘기죠. 

이상 첫 직장 사장이 해준 옛날이야기였습니다.




외국인의 이중고


이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매일 그야말로 멀미가 났습니다. 회사에서 남들이 하는 말을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이탈리아어도 완벽한 게 아니었는데 모르는 세일링 용어가 워낙 많았습니다. 모든 단어들이 배 위에 오르는 순간 제3의 언어로 돌연변이하는 느낌이었어요. 

일단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을 슬쩍 적어 놨다가 집에서 찾아보곤 했습니다. 대체로 세일링 용어는 일반 사전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서핑을 엄청나게 했었죠.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동업사장 두 명 다 자주 쓰는 '용어'였는데 그 빈도로 보아 매우 중요한 용어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인쿨라레(inculare)였는데요, 


이탈리아어는 대부분의 동사 원형에 -are가 붙습니다.

노래하다 cantare 깐따레 

춤추다 ballare 발라레

태킹 하는 것은 virare 비라레 라고 합니다.

자이브는 strambare 스트람바레


그러니 뭔가 행위이긴 행위인데 이게 뭘까 내내 궁금하던 것이 언제 풀렸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영어의 F***와 동류의 의미이되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묘사하는 단어로, 그냥 말 걸걸한 두 사장이 말끝마다 강도 높은 욕을 붙였던 것...

궁금해도 구글링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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