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요트잡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SAILING Mar 19. 2021

삼천포코너-이탈리아 세일링의 세 장면

아메리카스 컵, 미니 트란삿 그리고 안드레아 무라

디자인은 이탈리아 승인데

웬일로 이번엔 이탈리아가 올드 머그(Auld Mug)를 지중해로 가져오려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아메리카스 컵(America's Cup)이 디펜더 뉴질랜드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지구별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인질 잡힌 근 일 년, 세일링 이벤트란 이벤트는 몽조리 취소되던 와중 열린 레가타인지라 더더욱 화제의 중심이었죠. 만약 방역 모범국 뉴질랜드 대신 미국이 4년 전 아메리카스 컵에서 우승했었다면 아마 올해엔 뭐... 일본 올림픽 꼴 났었겠군요. (지난 경기에서 챌린저 뉴질랜드가 디펜더 미국을 물리치고 올드 머그를 뉴질랜드로 가져갔습니다)


근해 레가타 강국이지만 아메리카스 컵에서는 큰 성과를 낸 적이 별로 없는 이탈리아가 프라다 컵(Prada Cup, 아메리카스 컵 도전자를 뽑는 경기)에서 우승해 정식 '챌린저'가 되면서 이탈리아 세일링계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본선에서도 뉴질랜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전했죠. 매스컴도 관련 뉴스를 쏟으며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모으고, 그렇잖아도 쉽게 끓어오르는 사람들은 더더욱 난리 부르스였나 봅니다. 파리 날리고 있던 각종 세일링 코스와 세일링 요트 바캉스 프로그램들은 매진이 되고 세일링을 배우려는 입문자들의 문의가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최근 다시 대부분의 지역이 봉쇄되며 이 수많은 세일링 코스들과 바캉스 예약들이 어떻게 될는지 또다시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요. (지못미 이탈리아...)




프랑스 스튜디오에 새로이 입사해 사장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탈리아의 이런저런 근황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밀라노 엑스포가 열리는 2015년이었는데 개장을 코앞에 두고도 대부분의 국가관들이 공사가 늦어져 미완성인 상태였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프랑스 사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저은 뒤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습니다. 그 짧지 않은 제스처가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요, 보통의 지구인이 이탈리아인에게 가지고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좀 더 강화된 형태로 표출하는 행위였던 것 같습니다. 한심스러움과 안타까움, 본인의 선입견을 재확인하며 찾아오는 안도감 등이 섞였다고 할까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을 미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미워할 때의 강렬함이 있습니다. 특히 원양 세일링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데에다 '대양은 대체로 다 프랑스 꺼'라는 국뽕 바이러스까지 만연한 프랑스에 대한 이탈리아 세일러들의 감정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방데 글로브(Vendée Globe)를 비롯한 주요 대서양 횡단 레가타의 상당 부분이 프랑스에서 열립니다. 이 중 그야말로 프랑스인들의 프랑스적인 잔치가 미니 트란삿(Mini Transat)이라는 레가타입니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대서양의 카나리제도까지, 다시 카나리 제도에서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까지 두 구간으로 나누어, 고작 21피트(6.5미터)의 작은 배로 홀로 4000여 해리(약 8300킬로미터) 대서양 횡단을 하는 레이스. 한 달 가까운 기간 쪽잠을 자며 평속 8노트 정도를 유지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대원칙에 의해 외부 도움은커녕 육지와의 통신마저 차단된 상태로 오롯이 홀로 벌이는 싸움. 항상 이 레가타를 통해 대양 세일러로 화려한 데뷔를 하는 젊은이들은 영예로운 프랑스인이었는데 이번엔 갑자기 짤뚱한 이탈리아인이 나타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42년의 미니 트란삿 역사 최초로 우승한 이탈리아인 암브로죠 베카리아(Ambrogio Beccaria)가 그 주인공.

영상만 봐도 덩달아 대양 횡단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죠?  




선물 받은 지는 십 년쯤 된 것 같은데(헉) 요즘에야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양 세일러 중 하나인 안드레아 무라(Andrea Mura)라는 이탈리아 세일러가 처녀 출전한 대양 횡단 레가타였던 럼 루트(Route du Rhum)의 이야기를 무라 본인이 쓴 책입니다.

모험, 미지 그리고 두려움(L'avventura, l'ignoto e la paura)이라는 제목에서 '저런 비인간적인 어드벤처 피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으려나'라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읽는 내내 짠함이 가시지 않는군요. 라면만 먹고 운동한 임춘애나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시합 준비를 한 김연아 선수가 오버랩되는 열악한 환경과 이를 극복한 인간승리, 이탈리아인 특유의 자유로운 생각으로 경쟁자들과 전혀 다른 갑툭튀 선택을 하고 이를 우승으로 이어지게 한 안드레아 무라의 기지가 저를 사로잡더군요.

안드레아 무라는 책 이전에 두 번이나 실제로 만난 적도 있고 이미 예전부터 좋아하던 세일러입니다. 럼 루트 이후 굵직한 대양 횡단 레이스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으나 늘 열악한 지원과 스폰서의 부족으로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애초 시작부터 그랬군요.

2013년, 가장 험한 대양 레이스중 하나인 오스타(Ostar)에서도 우승을 했는데, 톱 세일러가 피곤에 쩔은 눈과 떡진 머리를 한 채 대양 한가운데에서 동네 친구 마르코의 꿀, 동네 친구 자코모의 보타르가(명란), 사르데냐 토산물 치즈 등의 PPL을 하던 장면은 지금까지 잊히지가 않습니다 ㅠㅠ

6:30부터 문제의 PPL 시작

다시 안드레아 무라의 첫 번째 대양 횡단 레이스 럼 루트 이야기로 돌아가서,

온갖 고생을 하고 대서양 한가운데 아소르스 제도에 다다를 무렵, 신비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때까지는 배를 탈 때 자기를 둘러싼 환경, 즉 바람과 기상, 바다 등을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분석해 세일링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자연스러운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름, 바람, 하늘, 물, 태양과 이들의 색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냥'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치 안드레아 무라 본인이 이 자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Diventare una cosa sola on la natura che ti circonda neutralizza la paura, ti senti parte integrante del tutto e non un corpo estraneo che può essere espulso. Sai istintivamente come affrontare le situazioni. Il sonno come i temporali, le onde come la fame, l'aria che respiri, tutto è diventato familiare, prevedibile, interpretabile e gestibile in maniera molto più facile.
주위의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이 세계의 이물질이 아니라 일부임을 느끼게 된다. 상황에 대처하는 법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뇌우와 같은 졸음, 배고픔과 같은 파도, 숨 쉬는 공기, 이 모든 것이 친숙하고 예측과 해석이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La mia sensibilità fisica è esplosa. Come uno straniero che a un certo punto comincia a pensare nella lingua del nuovo paese cosi io ho cominciato a pensare nella lingua della natura. Mi rendo conto che ho superato il confine e ora potrei continuare a navigare sneza limiti. Dieci o cento giorni non farebbero tutta la differenza. Ora la mia mente è libera di espandersi oltre i confini segnati dall'orizzonte e tutto sembra più chiaro.
내 몸의 감수성이 폭발했다. 마치 새로운 나라에서 현지어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외국인처럼, 나는 자연의 언어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한계를 넘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아무런 제한 없이 항해할 수 있다. 열흘을 항해하나 100일간 항해를 하나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제 내 마음은 수평선 너머까지 퍼져 나가고 모든 것이 더 명확해 보인다.


세일링에서의 득도란 이런 게 아닐까요? 자연과의 하나 됨, 높은 정신의 경지가 부럽습니다.



https://www.lastampa.it/mare/2019/11/15/news/mini-transat-ambrogio-beccaria-entra-nella-storia-della-vela-1.37907604

https://www.gazzetta.it/vela/15-11-2019/minitransat-2019-beccaria-trionfa-mini-transat-transatlantica-solitario-mini-650-3501116048828.shtml 

https://blog.ormeggionline.com/mini-transat/ 

https://www.hinelson.com/blog/mini-transat-2019-pronti-per-loceano/ 

https://www.instanews.it/2021/03/17/vela-coppa-america-luna-rossa-new-zealand/

매거진의 이전글 삼천포 코너-배에서 물고기밥 덜 주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