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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Nov 13. 2022

어느 겨울밤, 바닷마을을 그리며

열여덟 번째 이야기

스무 살 무렵, 정확히는 스무 살에서 스물 하나로 넘어가던 그 겨울 즈음.

일본 영화에 빠져 매일 새벽까지, 유명하다는 일본 영화는 모조리 보고 두 번, 세 번 다시 보던 때가 있었다.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공이 일본 관련된 것도 아니었으며

그전까지 원피스 같은 유명한 만화 한 번 본 적 없던 내가 왜 그렇게 일본 영화에 몰두했었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떤 작품에 꽂혔던 것도 아니고, 그저 매일 눈에 띄는 작품을 바라보던 날들이었는데.


약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이듬해 봄이 동터오기 시작할 무렵, 더 이상 볼 영화가 없다고 느낄 즈음 나의 덕질 아닌 덕질도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그 뒤로는 드문 드문, 괜찮은 신작이 나올 때 정도만 일본 영화를 보다 보니 근 1년 간 거의 일본 영화를

볼 일이 없다가 어젯밤 자기 전 한 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봐야지 하고 담아두었던 작품이었으나

통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인데, 우연찮게 시작이 되어 처음에는 딴짓을 하느라 영 집중을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푹 집중을 하여 앉은자리에서 결말까지 보았더랬다.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는 밤이었다. 내가 왜 일본 영화를 좋아했었나, 아니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가 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에게 일본 영화는 어느 순간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의 공감각 중 하나였다.


집으로 돌아와 텅 빈 방안을 메워주는 일상이자, 저녁밥을 먹는 동안 옆에서 재잘거리는 누군가의 음성이자, 잠들기 전 고요한 방 안 속 냉기를 아주 살짝 덥혀서 꽤 따뜻하게 해 주는, 그 일본 영화 특유의 운율과 리듬을 나는 무한하게 좋아했다. 객체가 없는 절대적 호의와 동경이랄까.


어찌 보면 그 예전 스무 살의 내가 겨우내 일본 영화를 차곡차곡 담아두었던 것은 마치 겨울잠에 들기 전 식량을 배불리 먹어두던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때로는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쳐 인류애가 소멸될 것만 같은, 살얼음 판 같은 그 상실감 위에서도 사뿐히 나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내 감성의 곳간 같은 것.


한국인으로서 자칫 민감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작품들 특유의 감각적 문화를 오롯하게 향유하고 싶다. 아,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오늘 밤 어떤 영화를 보러 갈지 영 딴생각에 빠져버리는 것을 보아하니 새삼스레 그 겨울이 오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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