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고도 가장 어려운 목표 앞에서 우리는
아이는 며칠을 앓았다. 곁을 지키던 부모의 미간 사이에도 원인 모를 미열과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마디마다 맺힌 아이의 열을 주무르다, 괜스레 내 체온이 넘어갈까 봐 두 손을 허공에 휘저어본다. 한껏 열을 머금은 아이는 속없이 깔깔 댄다. 그래, 이렇게라도 웃어보면 어떠리.
어른이 되어갈수록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이 많아진다. 그것은 복잡함에서 오는 어려움보다, 감히 이 활자들로 설명해도 될 지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이다.
이렇게 탈없이 살아가는 것 자체로 위대한 삶이었다.
평범하다 생각했던 시간들 아래로 그 얼마나 많은 발걸음이 땅을 뒤덮고 그렁그렁 맺혔을지. 아이만 괜찮아질 수 있다면 내가 더 아파도 된다는 말이 어떤 눈물로 써 내려간 마음이었을지. 아픈 아이를 두고 나선 출근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루라도 먼저 알 수 있었더라면. 그럼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조금이라도 더 눈을 맞추며 검지손가락을 움켜쥔 그 작은 손을 좀 더 오래 두었을 텐데.
오늘만 아프고, 내일은 조금 더 웃어보기를. 거창하길 바랐던 삶에게 결국 바라는, 유일하고도 가장 어려운 목표 앞에서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