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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주신 30년 전 일화

by 부아c

초3 둘째가 반장 선거에 나갑니다. 삼행시를 만들어서 반장 선거 발표를 준비하더군요. 조그마한 아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하니 어머니가 가족 단톡방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 주셨습니다.


손주들의 반장선거에 즈음하여, 생각나는 게 있다. 내가 5학년 담임 맡았을 때, 반장선거하는 날이었다.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고 머리도 잘 빗지 않는 말썽쟁이 남학생이 반장에 압도적인 표차로 선출된 거야. 이해가 안 가더라고 그 답은 일 년 뒤에 알게 됐지.


다음 해 3월 2일, 그 아이들은 6학년이 되고 나는 4학년을 맡았다. 짐을 잔뜩 들고 새 교실로 걸어가던 중, 우연히 그 아이가 나타나 "선생님, 제가 들어 드릴게요" 하면서 새 교실까지 다 옮겨주더구나. 그리고 "더 할 일은 없어요?", 하면서 활짝 웃는 아이가 갑자기 달라 보이더라. 다음 날 또 만났는데 더 도울 일 없느냐는 듯이.


일 년 만에야 나는 그 아이가 반장이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단다.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고마웠고, 친구들도 이런 마음을 느꼈던 거로구나. 친절한 마음, 진실한 마음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


저는 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타면 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닙니다) 그렇게 몇 년, 이제는 제가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동네 어른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착한 아이, 똘똘한 아이, 대견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좋은 말을 들을 을때가 많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친절한 아이, 배려가 있는 아이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친절과 배려라는 것은 언뜻 남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친절은 세상을 아릅답게 한 다음에 결국 나에게 다시 돌아와 나를 아름답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제가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이 글귀를 보면서 제가, 그리고 저의 아이들이 타인과 세상에 더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친절은 최고의 삶의 테크닉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공경해 주는 사람을 공경하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합니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사람은 항상 자신을 굴복시키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삽니다. 상대를 도와주고 배려하는 사람은 자신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니 친절이야말로 위의 모든 삶의 기술을 아우르는 최고의 삶의 기술입니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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