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지옥은 견딜 만한 지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면 그곳에서 바로 뛰쳐나오겠지요. 하지만 적당히 힘들다면, 어느 정도 견딜 여지가 있다면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이 보상도 크고 달리 갈 곳도 없다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질 겁니다.
직장 생활은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출퇴근도 힘들고, 업무도 낯설고, 불합리한 관행이나 경직된 조직 문화, 인간관계에 지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차차 지우는 법을 익히고, 이 모든 것에 순응하게 됩니다. 그렇게 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직장인 1이 됩니다.
회사 생활도 익숙해지면 제법 할 만해집니다. 전보다 더 힘든 일이 닥쳐도 스스로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연봉이 오르지 않아도, 승진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다른 곳에 가도 똑같다고, 다들 이렇게 사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저도 3년, 6년, 9년, 12년 차의 방향을 견디면서 점점 무뎌지더군요.
그러다 보면 상황이 조금 더 나빠지더라도 그저 견딥니다. 아픈 것도 익숙해지면 아픈지 모릅니다. 부족한 것도 부족한 것인지 모르게 되고요. 내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사실도 애써 모른 척합니다. 심지어는 바로 옆에서 선배가 하나둘씩 회사를 나가게 되는데도 ‘저 사람만 문제가 있었지, 나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하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는 후배가 치고 올라와도 ‘나는 경험이 풍부하잖아, 나는 상부의 두터운 신임이 있잖아’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회사 생활을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되거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는다면, 그제야 차가운 현실에 내던져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물이 끓는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나와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내가 조금씩 밀려왔구나, 이제는 내 차례가 되었구나, 앞서 회사를 나간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구나, 나는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구나,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고 나는 회사와 계약을 했을 뿐이며 이제 그 계약이 끝난 것이구나!’
2023년 퇴직한 4050 세대의 절반가량이 비자발적 퇴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비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전망입니다. 만약 내가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면, 회사에만 올인하고 있다면, 지금을 견딜 만하다고 느껴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보세요. 한순간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100도가 된 끓는 물에 화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견딜 만한 상황에 있다고 가만히 멈춰 있으면 안 됩니다.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훗날 하루라도 회사를 더 다니려고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회사는 하루라도 회사를 더 다니려고 매달리는 사람에게 절대 친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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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매거진의 글을 기반으로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제 브런치 글을 잘 봐주신 출판사가 제안해 주셔서 책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제목은 <회사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입니다.
위 본문 내용은 제 책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