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오전에는 둘다 처리할 업무가 있어 오후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오후 휴가를 내고 그릉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진료실에서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최근 활동성이 좀 저하되어 잘 안 움직이고,
원래 입이 짧았지만 밥도 더 안 먹는 것 같고,
배를 만져보니 뭔가 물이 차 있는 것 같아요.
찾아보니 복막염 증세와 비슷한 것 같은데...
혹시 복막염일까요..?"
3년을 뵈면서 늘 친절하고 웃으시던 수의사 선생님.
오늘은 이상하게 웃음기가 없는 얼굴이다.
그릉이 여기저기를 진찰하고 검사를 진행한다.
몇 분이 흘렀을까...
수의사 선생님이 어렵게 입을 떼신다.
"생각하신게 맞는 것 같아요..."
애들 챙기는걸 늘 엄마에게 미뤘던 아빠.
그 순간에도 복막염이 어떤 질병인지 잘 몰랐다.
그리고 설명을 들으며, 검색을 해보며,
고양이에게 복막염이라는 질병이 어떤 질병인지를
그제서야 깨닫게 된 한심한 아빠가 나였다.
전염성 복막염.
FIP (Feline Infectiois Peritonitis) 라고 불리는 병.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대부분의 고양이가 갖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트레스 등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돌연변이를 일으켜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질병.
아직까진 치료법이 없어 치사율 100%라는 병.
남은 생을 몇 일에서 몇 주까지 항생제, 철분제 등
연명 치료 수준으로 유지시키는게 치료의 전부이고,
선생님이 지금까지 만났던 복막염 환묘들은
모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
청천벽력.
우리 그릉이를 보내는, 그릉이와 헤어지는...
무섭고 너무 아픈 생각이 온몸을 찔러왔다.
그리고 이어 후회와 자책, 분노가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분명 시그널이 있었다.
기력이 없어졌다 성격이 바뀌었다 생각한 그릉이는,
아파서 그랬던거다.
워낙 입이 짧은 아이라 이 사료가 싫어진거라 생각하고
계속 사료만 바꿔주었는데 복막염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여름에 더울까봐 등에 털을 밀어
상대적으로 배가 볼록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복수가 찬거였다.
몸무게는 3.5키로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복수를 빼니 2.9키로였다.
등에 뼈가 만져질 정도였는데
애용이와 종의 차이, 그릉이의 체형이라 생각했다.
설사나 구토 등 크게 생각할만 한 신호가 없었어서,
가벼이 넘겨왔던 신호들..
사실, 그릉이가 많이 아프단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