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사업모델
평소 나와 관계 없는 남의 일에 최대한 신경을 끄고 사는 편이다. 아니 내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조차도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최대한 대응하지 않고 결과로 보여주고 상황이 정돈된 후 시간이 한참 흐른후 이야기한다. 그런 생각이나 행동들 자체가 대부분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요, 결국에는 정상적으로 상식적인 상황으로 정돈되는게 세상의 이치요 균형이라는 것을 살면서 겪은 별의별 일들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도 아닌데, 내 페북라인을 지저분하게 만들면서까지 관심이 가는 일이 생겼다. S박사 사건이다. 물론 나를 길게 보고 내 SNS 운영 스타일을 파악하신 분들은 예상하시겠지만, 각 내용들을 정독한 후 모두 삭제할 예정이다. 아무리 좋은 글조차도 내 생각과 행동으로 정돈되지 않은 남의 생각으로 내 타임라인을 운영하지 않는다. 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행동하고 경험하는지 궁금하고 함께 하기 위해 내 SNS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요즘 SNS에서 난리가 난 S박사는 사이비 종교와 다단계 마케팅을 기반으로 '있어빌러티' 명분을 내세워 강력한 사업모델을 구축했다. 특히 같은 교육업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교육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판타지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업운영하다가 힘들때가 되면 매번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 아직까지는 '판타지 장사는 하지 말자!'는 신조를 단단히 붙들고 있다. 그래서 힐링 보다는 킬링, 좋은 말이 아니라 쓴 소리를 하면서 손해도 많이 보고 있다.
S박사 건이 화두가 되었지만, 사실 작년에 비슷한 일을 스타트업 바닥에서 겪었다. S박사가 구축한 사업모델과 거의 흡사하다. 아니 솔직히 더욱 노골적이고 직접적이기까지 하다.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소 수년 아니 그 이상 갈지도 모르겠다. S박사가 사회생활을 많이 못해서인지 너무 순진하게 사회를 만만히 보고 경솔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것과 달리 사회생활을 통해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라 훨씬 치밀하고 완벽하다. 당연히 증거가 남을만한 문제상황도 만들지 않는다. 한 예로 문제가 될 만한 말과 행동은 모두 자기가 완벽히 상황통제가 가능한 오프라인에서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건드리기 어려운 이유다.
작년에 존재를 파악하고 경악하기는 했지만, 사이비 종교와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들은 어차피 빠질 사람들이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을 끄고 있었다. 그런데 직간접적으로 육성하는 혹은 육성했던 스타트업 예비창업가들과 초기 창업가들에게도 어느덧 깊숙히 들어와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고 판단하게 되어 한동안 스타트업들을 단속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몇몇 스타트업들은 빠져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했다, "이미 모시는 신이 바뀌었구나!"
스타트업을 무대로 했을 뿐 S박사 사업모델과 거의 흡사하다. 자기 사업을 중심으로 수직과 수평으로 연계된 사업이나 서비스, 혹은 파트너들을 구성해놓고 함께 움직인다. 대외적 권위를 통해 신뢰감을 확보해서 유혹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소한 여기는 대놓고 영리추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S박사 콘텐츠들처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가 확신하는 자기 콘텐츠로 말하기 때문에 솔직하고 깔끔하긴 하다. 과연 그게 얼마나 스타트업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을 속이지는 않는다.
사업모델은 이렇다. 우선 각종 스타트업 육성과 지원 프로그램에 심사, 코칭, 멘토링, 교육이나 강연으로 잠재고객을 모은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금 받은 건 사업성공을 위해 줄 수 있는 일부라는 것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예고편을 뿌린다. 마케팅 비용도 안든다. 오히려 그 기관이나 기업에서 돈을 받으며 마케팅을 하는 형태다. 더구나 그 기관과 기업들이 신뢰를 인증하고 믿을만한 포트폴리오도 쌓아주는 형국이니 마케팅을 하면 할수록 더욱 권위는 올라가고 고객에게 권위와 신뢰에 대한 팩트도 더해진다. 당연히 이런 활동하는 모습과 유명한 스타트업 샐럽과의 친분을 과시한다. 실제 정말 그런 사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객들에게만 그렇게 보이는게 중요하다.
그 후, 잠재고객들에게 자기 회사나 파트너가 주관하는 무료강연에 참석하도록 유도한다. 예고편을 봤으니 이제 본 영화를 감상하라는거다. 당연히 무료강연에서도 본 영화는 안나온다. 예고편이 아니라 영화 주요장면이 담긴 맛보기 영상이 콘텐츠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사이비 종교와 다단계에 빠지지 않는 잠재고객들을 떨궈낸다. 강연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면 이건 내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에서 나온 것이니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권위로 눌러서 내보내버린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은 대개 성공 욕심이 눈 앞을 가리고 있거나, 사업이 안되고 있거나 잘 모르는데 의욕만 앞서서 간절하다보니, 그 무례함과 비상식적 대응이 강한 리더십과 권위로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말미가 되면 실패확율 0%라고 말하는 스타트업 성공 노하우 코스를 소개하고, 꽤나 목돈인 유료 결재를 유도한다. 마음 바뀌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카드결재까지 가능하다.
사람 심리가 참 재미있는게, 일단 그렇게 내 돈을 그것도 큰 돈을 지불하고 나면 열렬한 팬이 된다. 유료코스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쓴 돈만큼 그 서비스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게 최고라 믿는다. 중간중간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어도 대부분은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은 내가 쓴 큰 돈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내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그런 괴로운 마음을 갖기 보단 차라리 스스로 믿어서 마음의 평온을 얻는 쉬운 선택을 한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내용에 사업성공에 도움이 되어도 무료로 진행하는 코스들에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소홀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코스 기간이 끝나고 사업에 별다른 도움이 안되었거나 오히려 엉망이 되었어도 문제는 벌어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내 선택에 대한 돈으로 표현된 가치를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노력이 모자랐거나 자기가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수십 수백 스타트업이 모이다 보니 어쩌다 한 둘 괜찮게 하는 곳들이 있다, 일부는 의도적으로 그런 곳들을 모으기도 하고. 그러면 이들은 성공 케이스가 되어 자신의 실패는 자신의 문제로 판단하는 근거가 되며, 이들은 Hero가 되어 더 많은 잠재고객들을 암암리에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소수의 몇몇이 정신 차리고 이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도 문제는 벌어지지 않는다. 사업성공여부는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창업가의 문제로 틀을 짜놓았기 때문이다. 무료 오픈강연부터 성공율 100%의 비법 노하우라는 콘텐츠의 완전무결을 이야기하고 권위와 몇몇 의도된 성공케이스로 중무장했기 때문이다. 즉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는 창업가가 제대로 못한 이유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도록 프레임을 설계해놓았다.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지해도 그들의 프레임에서는 그들이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주장하기 모호하고, 이것을 문제 삼아 대외적으로 이슈화시키면 자기가 거기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여기저기 소문내게 되니 대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보니 거기에 빠졌었다는 것만으로도 스타트업이나 창업 바닥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 사업모델을 파악하고 정말 돈벌기 위해 제대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S박사도 여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허술하게 사업모델을 구성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나 역시 여기를 파악하고 난 후 많이 배웠다. 흉내내서 사업모델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업모델들이 흡사하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이 시장에서 어떤 포인트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둬야 '사기'와 '진심'을 갈라서 보여줄 수 있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알 수 있었고, 그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