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심사, 발표, 사업계획, 창업, 창업가
한창 스타트업 선발 시즌이다. 최근 심사자리에 평가위원으로 여러곳 가고 있다. 하다보니 벌써 몇년째 하고 있어서 별의별 경우를 다 경험했기도 하고 요즘은 예비창업이나 극초기 보다는 그 다음 단계 이후 스타트업을 주로 대상으로 하다보니, 이제는 왠만해서는 별로 놀랄 일이 없다. 그런데 오랜만에 쇼킹한 아니 쇼킹하다기 보다는 이해 안되는 일 몇몇을 겪었다.
1. 선발되면 꽤나 큰 사업자금을 지원해주는 동시에 사업성장을 위한 각종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스타트업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기회인데, 참 놀라울 정도로 창업가와 대표들이 발표 준비를 안하고 온다. 예비나 극초기 창업 단계를 넘긴 곳들이다 보니 사업계획서나 발표자료는 예전보다는 그럭저럭 상향평준화 되었는데, 절반 가까이는 발표 수준이 참혹하다. 설득을 목적으로 한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과 커뮤니케이션까지도 기대하지 않는다. 최소한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발표 자료를 숙지하고 거기에 나오는 내용은 알고 와야 하지 않는가? 오프라인이던 온라인이던 상황에 맞춰 연습 몇번은 해봐야 하지 않는가?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는 스타트업 창업가와 대표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더 재미있는 건 예비나 극초기 보다 스타트업 성장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준비를 안한다는 점이다. 초기창업패키지, 창업도약패키지로 갈수록 더 준비 안하고, 투자단계가 높거나 창업가가 유명세 조금 타고 있으면 혹은 스타트업이 언론 좀 나왔거나 수상경력이 많으면 더 준비 안한다. 모두 사업역량과 전혀 상관 없는 부분인데, 그걸로 이미 사업 잘하고 있는 줄 안다. 발표 준비 안하고 오는 창업가와 대표들을 보고 있으면, 평가위원으로서 무시 당하는 느낌이 든다. 분명 간절한 상황인데 간절해보이지도 않는다. 평가위원들도 귀한 시간 내서 큰 돈 받는 건 아니지만 괜찮은 스타트업들 만나고 싶은 마음에 선의로 달려왔는데, 평가위원들 귀한 시간 낭비 시키면서 같이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건지...
2.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활동하다가 직접 스타트업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투자나 육성, 지원 업무를 하다가 직접 자기가 창업을 한다. 아무래도 이 바닥 생리를 잘 알다보니 유리한 점도 많지만, 그런 업무를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 현업 경험이 없다보니 정작 사업을 성장시키는데 한계점이 많다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분명 강점이 있다. 최근 심사에 참여하면서도 이런 배경을 가진 창업가와 대표가 만든 스타트업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은 당연히 잘하는데, 의외로 1/3 가량은 꽤나 신선한 충격을 준다. 특히 창업지도사, 스타트업 멘토가 창업한 몇몇은 당혹스럽게 했다. 가르치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다르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느정도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말은 계속 바뀌면서 논리는 엉망, Q&A에서는 동문서답, 사업 이야기를 묻는데 말꼬리 이어서 피해가는 핑계로 일관, 기타등등..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사업 멘토링하고 더 더욱 쇼킹은 사업계획서와 발표 멘토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에게 배운 스타트업들은... 아아~~ 아찔하다.
3. AI ㅇㅇㅇ 광고 플랫폼이란다. 일단 앞에 'AI'자 붙이면 습관적으로 더 까다롭게 본다. 유행하는 키워드니 죄다 AI를 붙이는데 정작 제대로 AI하는 사업모델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계획서부터 발표까지 내용이 점점 더 산으로 간다. 하다못해 게임에 가상현실까지 들어가 있다. 뭐 하겠다는거지? 대표가 발표하는데 노랑머리 외국인들까지 대동해서 와있다. 고객부터 시장, 사업아이템과 사업모델의 연계성이 거의 없고 좋은 말은 다 있는데 구체성이 전혀 없다. Q&A로 확인해봐도 원론적인 이야기 뿐이다. 거기에 고객 혜택이 죄다 금전적 포인트 지급인데, 자금 확보와 수익모델이 대충처리되어 있다. 경험치가 있어서 순간 머리에 스치는게 있어서 팀구성을 꼼꼼히 봤다. 예상대로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고 짧은 해외 영업 경험 있는 사람과 개발자 1명, 나머지는 모두 재무쟁이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전 커리어와 프로젝트들을 보니... 요즘 곳곳에서 자주 발견되는 예전 블록체인 가상화폐 스타트업들이 가상화폐 숨기고 사업아이템 화장해서 나온거다. 가상화폐를 돈처럼 찍어내서 포인트처럼 뿌리고 사업자금으로 쓰겠다는... 순간 짜증이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