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신작, 영화, 영화평, 리뷰
파과, 모든게 올드한데 올드함이 색다른 매력인 영화다.
#파과 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베를린 영화제 소식으로 존재를 알게 된 영화인데 '늙은 여자 살인청부업자'라는 소재만으로 관심이 갔다. 단지 '살인청부업자'와 '늙은' 거기에 '여자'라는 인지부조화를 가져오는 조합 때문이었다. '살인청부업자'라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게 '젊은' 그리고 '남자'로 그야말로 마쵸적 호르몬이 넘치는 단어들만 떠오르다보니 당연했다. 물론 그 사이 #테이큰 영화를 시작으로 '중장년'이라는 키워드로 확장되었고 여러 여성 살인청부업자 주인공 영화들이 나오면서 '여자'라는 키워드도 낯설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 한계를 넘어서는 피지컬 우위성이 나이와 성별을 깨고 결국 외형만 다른 마쵸영화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살인청부업자라니!
사실 보고 싶던 영화였지만 많이 망설였다. 볼까 말까가 아니라 언제 볼까로 말이다. 소설 원작에 연극으로도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파과'라는 제목 그대로 망가지고 상해가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과일은 이 영화가 도파민 팍팍 뿜게 만드는 단순히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영화가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쓸모'라는 관점에서 피지컬 즉 육체적 퇴행이 젊은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고 스스로도 점차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 명확했다. 만만치 않은 나이인 지금 필요 이상으로 영화에 빠져서 공감하고 우울해질까봐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 봐야만한다고 생각해서 쉽게 볼 날짜를 못정했다. 예전에 20대에 연극 #고도를기다리며 를 보고, 30대에 영화 #은교 를 보고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멘탈이 나갔던 경험이 있던지라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결국 어제 보러 갔다.
예상대로 무지 올드했다. 요즘 액션영화답지 않게 캐릭터 구축과 이야기 흐름은 옛날 영화처럼 꼼꼼하게 치밀하고 느리게 움직인다. 그 흔한, 요즘 당연하게 여겨지는 과장되거나 화려한 스타일도 없이 아주 담백하고 묵직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무겁고 어둡게 만들면서 특정 장르나 취향의 영화라며 있는 척하지도 않는다. 모든게 있는게 있어야할 때 있고 필요하다 생각될 때 있고 무리하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을 심리적, 감정적으로 짖누르지만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마치 영화학 기본원서대로 모범생이 만든 느낌이랄까?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모든 요소가 영화가 갖고 있는 메세지와 주인공을 중심으로 '올드'를 컨셉으로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그렇다보니 평범해보이지만 평범하지 않게 보이는 시너지가 났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이야기가 흘러감에도 계속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그렇다보니 후반부 당연히 이렇게 흘러갈거라 생각했던 부분마다 작게 작게 변수를 만들어가다가 어찌보면 다른 액션영화에서 가장 흔한(?) 엔딩이 역설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반전 엔딩으로 느껴지는 마법이 벌어진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65세 할머니 살인청부업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혜영 을 필두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젊은 남자 살인청부업자 #김성철 , 그리고 #신시아, #김무열, #연우진, #김강우, #옥자연 등 주조연할 것 없이 호연을 펼치면서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느껴질 정도다. 특히 이혜영과 김성철의 연기는... 와우!
재미있게 봤고 영화 좀 보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보시라고 강추할 정도지만, 다행히도 걱정한대로 멘탈이 털리지는 않았다. 마음 한켠 무거운 돌을 얹어놓기는 했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아가 파멸까지는 이르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세계관 그대로 확장해서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존윅과 람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