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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Apr 21. 2024

2013년 그린 민트 페스티벌에서 찾은 자유

스스로에게 지우는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들’로부터의 해방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LP(요즘 사람들 표현으론 "바이닐")를 자주 틀어주셨고,
어머니는 93.1 라디오채널과 클래식 테입을 자주 틀어주셨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운전을 할 때 93.1 클래식 채널을 듣고,

출퇴근 길이나 집중할 때 재즈를 듣곤 한다.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갖게 됐을 땐,

재즈 래디오 닷컴을 통해서 매일 종류별로 많은 곡의 재즈를 들을 수 있었다

24시간 재즈만 틀어주는 채널까지 손에 넣게 되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군.


그렇게 시작된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사랑은

점점 성인이 되면서 '필요 이상으로 고착화'되어 버리더니,

결국은 재즈와 클래식만 들어야하는 사람처럼 나 스스로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두 장르의 곡만 듣냐? 절대 그렇지 않다.

아이돌? 기술공학의 꽃이 '자동차 산업인것 처럼, 지식/문화 산업의 꽃이 '아이돌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일부 아이돌의 노래와 퍼포먼스는 이미 '문화'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락 밴드의 음악은 어떤가? 멀리는 엑스재팬부터 RATM, 오아시스, 뮤즈 정도는 정말 좋아했다.

힙합? 당장 오늘 집에 오는 길에도 Heavy-D and the boys의 "now that we found love"을 들었다.


다만, 보여지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 저 두가지의 장르만 보여주려 애쓰는

'나는 이래야한다'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다. 누가 무슨 신경을 쓴다고,

나에 대한 이미지를 자꾸 그렇게 만들어가야할까.

언젠가부턴 "너도 이런 노래 들어?"라는 말을 듣는 상황이 자주 펼쳐져서는,
오히려 내가 남들의 나에 대한 인식을 위해서 재즈와 클래식만 억지로 듣는 상황도 발생하기까지했다.


사실, 음악은 그냥 편하게 듣고 즐기면 된다.

너무 큰 의미를 가질 필요 까진 없는데, 막상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최초의 재즈 축제가 열린 개최 시기부터 가고싶다고 노래하던 나는,

3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의 9년째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을 보였다.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찾아가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온 몸을 던져 흠뻑 젖어본 뒤에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늦게나마 찾아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어땠냐고?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로맨틱했다.
드넓은 잔디밭, 정말 '재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 더 매력적이었던-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와인을 마시며
재즈를 듣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처음 보는 무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평소같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푸드트럭 앞의 줄서기조차도 흥겨운 그 무드.
과격한 락 공연이 아닌, 정돈된 재즈 공연이 온 섬을 휘감는 그 달달함이 떠오른다.


그래. 역시 공연은 즐겨야해.

1년이 지난 가을, 이번에도 자라섬을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디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디라도 찾아가는' 내 모습이 절실했다.

사회 생활을 하며 점점 소극적으로 영역이 줄어드는 바보같은 모습을 탈피하고 싶어서-

이번에도, 큰 마음 먹고 티켓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올림픽공원을 택했다.(고작!)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 10만원 안팎이었던 그 돈이 부담됐던 건 아니고,

다만 '훌쩍 가면 그만인데 선뜻 발을 못 떼는' 천성 탓에

쉬 결정을 못내리다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공원으로 타협했던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가을의 잔디 향을 듬뿍 마시며, '멋진 직장인'답게 혼자 페스티벌에 와서

돗자리를 펴고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가을 햇살을 등지고

레알마드리드 홈 유니폼(등판에는 No.7 "그녀석")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을 머금고,

적당히 편안한 머플러를 두른 채, 당시 몇 곡의 가사 정도를 외우던 제이래빗의 무대를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제이래빗의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으니,

아. 자라섬에 갔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언제까지 재즈만 고집할 거냐는' 스스로에 대한 타박을 던지며

익숙한 가요와 팝, 적당한 재즈와 어쿠스틱에 마음을 던져보자는 각오였던 것 같다.


시계는 누군가를 위한 약속이지만, 내 삶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나만을 위한 자연스러움이 필요한데, 누구도 규정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나는 왜 이리 스스로 규정하는가?
이틀의 공연 중에서, 첫날을 택한 이유는 바로
 '푸디토리움', '불독맨션', 그리고 '피터팬콤플렉스'였다

십센치, 존박, 이승환, 장기하와 얼굴들이 아니고?


지금에야 많이 달라졌지만,

나는 당시에는 '예전에 알던 것들이 지금의 내 주변 모든 것보다 낫다'라는

무조건적인 과거의, 노스탈지아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고교생 시절부터 봐왔던 '적당히 B급'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그들을 보러

첫째날 공연을 선택했던 것이다.


클래식. 재즈. 아니면 B급 취향. 들어도 알겠지?
나도 적잖이 중2병같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나름의 '음악에 대한 고집'같은.


제이래빗은 제법 좋았다.

그들의 나직한 음색과 노래도 좋지만,

나의 이목을 끌었던 건 그녀들의 두가지 면모였다.


'작년엔 저기였는데 올해는 큰 무대로 왔어요'라며

관객들에게 기쁨을 감추지 않는 '소녀스러운 그 모습'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공연 시간이 끝나 더이상 앵콜을 할수 없는 아쉬움을 멘트로 하던 중

주최측에서 조명을 내리고 시그널 뮤직(...)을 틀어버리던 사태를 봤을 때였다.


제이래빗의 노래는 몇가지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제법 팬이 되었던 것 같다. 정성. 그리고 진심.

나는 그것들을 그녀들의 무대와 짧은 몇마디에서 느낄 수 있었고,

"아. 이게 관객과 아티스트의 호흡이구나"라는 걸 알게 된 계기


이어지는 존박의 무대를 보며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고,

슈퍼스타 K를 통해 봤던 '잘생긴 그'가 얼마나 무대에서 편안하게,

석양이 지고있는 올림픽공원의 너른 공기를 가득 그의 목소리로 채울 수 있는지,

연인의 손에 이끌려 다른 무대를 포기하고 앉은 '남성'들에게 본인의 매너와 목소리만으로

존박이라는 아티스트로서의 가치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이 무대에서 불렀던 "Stand by me"를 찾아서 듣는다.

리버 피닉스가 나오던 그 영화, Ben E.King이라는 이름부터 떠오르는

'고전영화'와 '올드팝'에 대한 고집을 가진 내게 존박이라는 아티스트가 부른

Stand by me를 새롭게 가져다 준 바로 그 순간은 아직도 소중하다.


과거의 나에게서 조금씩 작별하던 위대한 순간이랄까.

과연 그런 것이었다.


열 개의 그룹에게 다 같은 내 모습을 강요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모두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웃기지만, '어디엔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스스로 공식을 지우지 말자.


10대 시절 나를 즐겁게 해줬던 피터팬 콤플렉스의 음악도 충분히 들었고,

점점 석양이 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올 때 쯤,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을 보러 갔다.


장기하와 얼굴들?

무도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몇가지 밝고 웃기는 노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라임라이트를 받으며(연극 용어였던가? 모르겠다. 그냥 편하게 쓰고 싶다.) 부르는

'그 때 그 노래'라는 곡은 그전까지 아끼던 김동률, 이적,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보다

더 큰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냥 웃긴 밴드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

예능감"이 좋고, 학벌이 좋고, 병맛코드로 떡상한" 류의 말들이 무슨 필요 있나

나는 이미 그들이 선보이는 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다.


마치 이대에서 진행된 '주주총회' 콘서트에서 본 성시경의 '거리에서' 라이브를 보고,

지금까지 내가 성시경의 음악과 목소리에 빠져살게 된 것처럼

하나의 공연이 누군가의 삶에 주는 영향은 이렇게 크구나 라는 생각-


그 뒤로 이승환의 무대까지 충분히 즐기고 나왔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것들은 제이래빗의 아쉬움 가득한 인사,

존박의 노래에 눈을 감고 가을 햇살을 느끼며 잔디향을 맡던 그 순간,

장기하의 노래를 들으며 장기하와 나 외에 누구도 느낄 수 없던 그 적막감

바로 그 뿐이었다


페스티벌을 간 것도 그 뒤로는 없었다

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 나아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자라섬 페스티벌과 그린민트페스티벌 단 두번의 공연 이후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사실이다.


겪어보지 않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거만함을 버리고,

나는 이래야한다라는 무거운 스스로에게 지워진 짐도 벗어던지고,

어떤 문화, 어떤 대화, 어떤 삶을 사는 그 누구도 존중할 수 밖에 없는

'별 일 없이 사는' 보통의 사람으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모든 삶은 특별하다. 그러니 내 특별함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애쓸 필요는 없다. 별일 없이 산다는 그 느낌 하나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위로하기조차 어려운 삶이다.

"내가 뭐라고" 너보다 잘 났다고 너를 위로하겠나 라는

넉넉한 마음의 공간이 줄어드는 어른들의 삶을 사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난, 쭉 별일 없이 살고 싶다.

별일 없이 글을 쓰며, 왁자지껄 편의점 앞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수험생 무리를 지나 캔맥주 한캔과 봉지 과자를 사서

그들을 등지고 걸으며 '힘들겠다. 그래도 지금 저 대화가 얼마나 즐거울까'라며

그저 있는 그대로 그들의 순간을 바라보는 '남보다 내가 나을 것 없다는' 편안함을 가진

어른의 모습으로 내일도 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여전히 나는 긴 호흡으로 글을 쓰지만,

언젠가는 그 호흡이 짧아지는 날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숨에 쉬어지는 글을 이렇게 하루 하루 소담히 담아가야겠다.


'남들 다가는 공연 따라가봐야 뭐해'라는 철 없는 주인공 코스프레를 버리고,

좋아보이는데 얼마나 좋은걸까 라는 건강한 호기심으로, 도전하는 하루를 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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