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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모든 관계는 절취선이 있다. 마침내 끊어지는

그러니, 편안하게 받아들이자. 우리의 삶을.

by 알렉스키드
난 대학 동기가 적었다.
아니, 많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영학부 200명이 적은 수는 결코 아닌데,

소위 “인싸”만 고집하던 내가 막상 과에선 20명 미만의 동기들의 연락처가 있었고, 그나마도 8명 정도와 졸업까지 친하게 지냈다.


당시 동아리, 교회 대학부 활동에 깊이

몰입되어 있던 상황도 있었지만,

딱히 대학교에 자부심도 소속감도 못 느끼던 터라

새터도 과 MT도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상술한 8명이라는 그들도 전공 수업 때 알게 된 같은 8 학군 출신 동기들(휘문, 중산 등) 몇 명 등 고등학생 때 학원에서 친구 만나 놀듯 깊은 관계를 맺었다. 지금까지도.


심지어 과에서 본 어떤 그룹보다
우리 모임이 취업도 제일 잘했다
이러니 다른 모임이 필요 없다고 여겼지


학교 동기들에게 크게 애착을 못 느낀 이유,

어울려야 할 이유를 못 느낀 이유는 솔직히 간단하다


가고 싶은 대학교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첨으로 운 좋게 들어간 창원 YMCA 유치원부터,

세 군데의 초등학교, 서울 서초구 중학교,

강남구 고등학교까지

어느 하나 나의 의지로 소속을 정한 적이 없다

(심지어 교회마저도)


그런 내가(다수의 우리가)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내가 낳은 노력의 열매, 그 소속의 이름이 바로 대학교.


난 내 노력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결국 제대하는 해 한 학기는 편입 공부로 올인하고

지원했던 예닐곱 개의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아 들고 나서야 “다 이루었다 할 만큼 했다 “는 스스로의 설득이 완성됐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 과 연계 해외 봉사단 등을 집중할 수 있었다.


난 삶을 바꾸기 위해 이만큼 해왔고,
내가 받아야 할 몫은 여기구나 라는 안도감
그리고 비교적 건강한 타협점을 찾았다


삶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볼 수 있었다면, 나는 언제부터 각잡고 수학을 공부했어야할까. 언사외덕에 대학을 갔다지만 결국 수학은 20대의 나를 흔들어놓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소속을 정할 취업시장에 뛰어 들었고, 이번에는 구직 당시 가장 핫하던 계열사에 공채로 합격할 수 있었다!


합격 통지를 받은(퍼즐 그림이 완성되던) 날,

태어나 처음으로 소속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희열에 집으로 오는 전철에서 눈물까지 흘렸다!


드디어 나도, 자랑할만한 소속을 갖게 됐다


대학 진학이 결정된 그 해에는 체념에 가까운 20대 초반의 내가 있었다면, 취업이 결정된 그 해 겨울은 내게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한한 감사와 자신감이 솟구치던 20대 후반의 내가 있었다!


그룹 공채 입문교육 조 동기 20명
계열사 입문교육 40명, 팀 동기 5명
그리고 타 부서의 선후배들까지 모두
내 핸드폰에 저장하고 네트워킹을 즐겼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 소속을 물을 때,

웬만큼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그 자존감은

그 당시에만 겪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대학 신입 시절 못 누린 서글픔은
취업 하나로 몇십 배의 행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조금씩 이전과 다른 차이들을 느꼈다. 그 작은 차이는 제법 아팠다, 아주 많이.

동기들이 조금씩 일 중심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전체 동기의 10%가 안 되는 경영지원부서인 나는 대부분의 동기와 대화가 어려웠다

모종의 이유로 2년 반 차에 부서 이동을 한 나는 대다수의 공대생 동기들과 같은 일을 시작했다.

이제 그들과 같은 대화를 하겠다는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따라잡기 버거운 갭만 크게 느끼며 자신감을 잃어갔다

결국, 부서 사람들 회사 동기 어느 쪽에도 예전만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었다.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결국 난 적응을 못한 패배자가 되어
처음으로 내 발로 회사를 나왔다
그들 눈에는 분명한 패배였으리라


그리고 두 번째 맞이한 직장에서,

무난한 적응을 하다가 굉장히 요구조건의 난이도가

높은 리더를 만나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다만, 그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받아들인 점은,

그는 오직 일에 대한 내 태도만 가지고 얘기했다
인성이나 사생활이 아닌 오직 회사에서 만난 사람답게 일에 대해서만 매일, 꼼꼼히/


이쯤 되니 오히려 마지막 배울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악을 받쳐서 죽어라 팠다 스스로를 위해서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그가 인정하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고

나 또한 너무 고됐지만 덕분에

직장인으로서 사회에서, 가장으로서 집에서 책임을 다하고, 어려움을 찾아 스스로 해결해 나가며 나 자신을 증명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 이후의 내 삶의 큰 보탬이 되는

터닝포인트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재미있는 선배는 딱 한달용이다. 물어봐서 모르고 책임지지 않는 선배? 바람에 꺼지는 거품 같은 것. 잘해주기 보다 일을 잘하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현직장 8년 차 미들매니저가 되었다.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말해 중견 사원-


새 직장 입사 8년 차가 되면서

최근 몇 년 담당한 job 특성상,

젊은(어린) 친구들과 일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이 든걸’ 느낀다.


점잖게 살 기회를 얻는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

하지만 요즘 느끼는 건 어느 순간부 턴가는

나도 ‘일 외적인 공감대’를 굳이 찾지 않으려는

건강한 어른이 되었음에 감사하면서도,


전 직장처럼 내 또래의 친구들이 속한 조직과

job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저게 나이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땅히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과 small talk을

자연스레 하는 것이 솔직히 가끔 부럽다


아주 가끔은 회사에서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긴장을 풀고 좀 편해지고 싶을때가 있다. 나도 인간이니까. 근데 주변은 다 어린 친구들뿐이다.


뭐랄까 난 젊은 친구들과
아주 가끔 “절취선”을 한쪽에 쥐고
일한다는 느낌이 든다


고민하는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만 말해도
너랑 나는 되게 먼 곳으로 찢어져 멀어진다는
네가 놓으면 찢어지는 그런 가벼운 절취선


어차피 계약관계인들이 모여 일만 하면 되는 곳이라, 억지로 눈높이를 맞추며 어울리고 싶은 건 아니다.


아쉬운 건 “나에게 자연스러운 그룹”이 없다는 것. 남자치고 굉장히 가족 베이스로 사는 사람인지라, 남자들에게서는 그런 공감대를 느낄 수 없는 것 때문에도 여기저기 끼기 힘들다. 낄 시간을 만들 수 없는 것도 힘들고. 중간 나이도 주변에 없고


고민이 없는 사람으로

9시부터 6시까지 존재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뭐랄까.

마음의 틈을 잠시 열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그런 점에서 40세 나의 사회 생활은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지만,


외로운 건 마찬가지다. 아주 많이.


30대 초중반에 속했던 그룹에서 일할 땐

내가 너무 어린 편이라(파트너들보다) 그게 힘들었는데, 요즘의 포지션과 나이는 오히려 그때의 job에 맞달까.


이전 직장 동기들의 요즘 근황을 들으면

확실히 “인원수”에서 오는 동년배 그룹들이 폭넓게 포진되어있고 거기서 나누는 자연스러운 공감대도 조금 부럽고. 금융권 다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


애기 둘을 키우는데 온전히 집중해서

회사 외 다른 삶이 없는 “어른”인 나는 참 힘들다.


이 고민을 하는 밤에도

둘째가 코가 막히는지 굉장히 잠을 못 자고,

첫째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뀌고 친구들이 유치원에 간다는 소식에 “그럼 나 혼자 남아?”라고 눈물을 흘리던 첫째의 그 짠한 잔상을 떠올리는

애기 둘 아빠 그 모습 자체인데

내일도 혼자 일만 하다 오는


어찌보면 사회 초년생일 때 그리던 가장 이상적인 삶에 가깝기도 하다. 회사에선 일만 집중하고, 퇴근한 뒤의 삶에 집중하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주니어 시절 꿈꾸던 내 모습을 하고는
그땐 몰랐던 외로움을 느끼고 퇴근한다


그런 철없는, 나이가 들어야만 느끼는 고민이 드는 일요일 밤이다. 요즘 내 고민과 마음의 무게는 이런 거다. 내가 일하는 건물, 파트너, 만나지 못하는 많은 친구들? 나는 내 맘을 그 누구와 논하겠나. 그저 낡아가는 나를 관망하는 것뿐


인간은 소통이 안되기 마련인데

정말 이런 얘기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 누구와도 통하기 어렵다


난 20대 때부터 늘, 통하지 않는 대화의 아쉬움을

노래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암막 속에 귀를 막고선

가여운 모습으로 사회생활 중이다


일 하나만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일에 집중하며 얻은 자신감이 내 자산이라면,

그럼에도 그 자신감이 “직장 내 외로움”을

불러오는 덫은 아닌가 가끔 생각한다.


일 외에도 내가 그들에게 궁금한 게 있듯이,

그들도 약간은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주말에 뭐 했냐는 그런 궁궁함말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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