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안하고, 가정도 안챙기는 삶은 '공기' 다. 대기오염에 가까운.
"좋은 아침입니다."
전혀 좋은 아침이 아닐 때가 대사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출근 시간에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두에게
눈인사와 앵무새 같은 멘트를 건낸다
좋은 아침이라며(안좋으니 건들지말자는 암묵적인 메시지일때가 많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을 보자면,
적어도 “좋은 무드를 생성하고자
애쓰는” 전우애는 꽤나 숭고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긍정적인 공기를 갖추는 노력
상사가 꾸짖은 어젯밤을 잊고 프로답게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안간힘
후배가 놓쳐서 난처해진 실수를 애써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필사적인 선택
“각자의 집”에서 나와 “공동의 사무실”에서만큼은 서로를 위해 룰을 지켜내자는 무언의 약속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도 교양과 품위가 있는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안도감도 제법 든다.
분명 출근하고 퇴근하기까지 마주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은 제법 Nice한 사람일 것이다
그럼, 가정에선 어떤가?
밖에서는 안그러니까 걱정마
밖에서 잘하면서 왜 집에서는
같이 사는 가족한테 그렇게 안하냐며.
물론 밖에서 받아주기 힘든 내 모습도 이해해주는 것이 가족이라지만,
남에게 잘하는건 가족에게도 잘해야하고,
남에게 못하는건 가족에게는 못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는 것.
어찌됐든, 친구보단 가족에게 잘하자는 것.
그렇게 커온 어른으로서, 가끔 들리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안 착한 사람들의
가족 구성원 이야기는 정말 안타깝다
회사에서 쌓인 감정의 피로는 회사에서 풀든가 아니면 안 쌓이게 관리하든가의 문제지,
퇴근해서 내 집에 같이 사는 가족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 정말.
더 바보같은 선택은,
그럼에도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이래야한다'며
정도 이상으로 회사 사람들에게 잘 하려
애쓰는 선택이다. 가정에 쓸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물론 나도 주변에게 잘하려 하는 편이고
비즈니스 매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만 나이가 들면서 유연한 현명함이 생기는건,
나에게 못하는 남에게 오지랍 넓게 용서와 아량
이해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것.
언젠가부터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유,
이제 부정적 감정을 준 사람을 굳이 용서하거나
더 잘 지내려고 웃음을 억지로 띠지않기 때문.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굳이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일흔번에 일곱번의 용서는 자식만으로 충분해
인간의 감정의 깊이와 인내, 노력은 한계가 있다.
결국 누적되고 “억눌린” 한계는 누군가에게 정제되지않는 짜증으로 전달되게 되어있다.
슬프게도 대부분 그 선택을 친구, 지인, 가족에게
전파하고 회사에는 티내지 않으려 애쓰는데-
요즘은 '시대가 변하는 것'이 보인다. 적당히 싫어하는 티를 내도 누가 함부로 말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낀 세대인 내 세대들은 아직도 꼰대들의 ”함부로“에 데이고 있지만.
본인 신입때 산업역군 간부들에게
영혼까지 털리던 기억을 해봐야 그 억울함 아무도 몰라주고, 반대로 나는 그런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동아리 후배 대하듯 후배 대해봐야
그거 알아주는 회사 사람 아무도 없더라
알면 그쯤하고 내 집에나 잘하자
"일 알아서 잘하고 제 몫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시대기 때문에, 감성적인 기대는 종이 비행기처럼 잘 접어서 옥상에서 슝 날리고 오세요. 멀리.
맞다.
기대가 없어지고나면,
오히려 관계가 쉬워진다.
의외로 까칠할 필요도 없고
적당한 농담으로 공감을 형성하는 여유도 생긴다
그만큼 나도 세월의 변화를 받아들인건지,
쥬니어 시절의 예민한 공감대는 줄이고
업무 중심의 대화와 공감대 형성이 되니
필요한 만큼의 감정과 시간을 쓰게되고
'퇴근길 버스에서 후회하는' 멘트가 없어진다
인정한다. 우리는 모두에게 잘 하고 싶다.
그건 모두가 같지만, 결국 이해관계로 모인 집단에선 한계가 있고 저마다 기대치와 인내치가 다름을 인정해야한다.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선배들 봐라. 잘하고 싶은데 후배가 안따라주니 화내는 거라고 귀에 못이 밖히게 말들 하시지 않나. 얼마나 괴롭겠나 그 착한 사람들이 어휴.
그냥. 그냥 심플하자 이제.
가족에게 제일 잘 하자.
직장에서 털리고 우는 직원을 잘 위로해주고 일도 도와주면 좋다. 근데 "거기에 힘을 다 쓰느라 집에 와서 아내와 아이에게 쓸 힘과 정성 없이 이해만 바라는" 바보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 출근하면서 또 인사하자.
좋은 아침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모니터 앞에 앉아서
얼마만큼 웃었는지 하이톤을 유지했는지 돌아보자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배우자(또는 엄마)와 인사하면서도
동일한 정도의 미소와 톤을 유지했는가?
위 경우에서 양 극간 많은 차이가 있었다면, 아무래도 당신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자신을 냉정히 돌아봐야한다. 처절하게.
회사일 대충하면서 최수종이나 좋은 엄마 코스프레하는 사람들 또한 극혐. 언급할 가치 전혀 없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하되,
적어도 관계적인 면에선 가정에 모든 힘을 쏟아야한다. 오늘도 어떻게하면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열심히 짬을 내서 고민하자.
그러려면 어서 일을 처리해야하고.
일처리에 집중하다보면 관계보다 일이 보이고,
젊게 살고 싶어? 일만 하자.
남에게 강요하고 넘기는 그런 일 말고,
회사 내 포지션에 맞게 회사 일 잘 하고 끝내고
가정 내 포지션에 맞게 집안일 육아 잘 하자
아. 일이든 집안일이든 공통점 하나 발견.
두 상황 모두 “도와준다”는 표현이 최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