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어보니 “목숨” 걸고 일한 그 절실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사회 생활 13년 차, 아빠 생활 5년 차에
품게 된 하나의 소담한 결론이 있다.
회사에 200% 목숨을 걸고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또 없다는 스스로의 결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 내 포지션에 맞는 역할을 잘 소화해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적어도 업무적으로, 비즈니스 매너적으로) 주는 일은 없도록
행동하는 것은 프로페셔널의 기본자세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굳이 언급하진 않음
특히나 가정도 꾸린 입장에서
회사일에 모든 진을 빼고 집에 와서 잠만 자는 그런 역할은,
아무래도 80년대생인 우리들의 아빠들만의 특권(?)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안타깝게도 세상이 변해버렸다.
더이상 아빠들이 회사일만 할 수 없다.
문맥은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진심은 그렇지 않다.
"그 때의 아빠들이 좋았다" 뭐 이런 논리는 절대 아니다.
지금처럼 직장 내 괴롭힘, 가스라이팅, 워라밸 같은 단어도 없이
오직 내 급여가 없으면 내 가족이 길거리에 나가 앉아야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하루 하루, 한해 한해 넘기던
목숨 걸고 일하던 생업 전쟁의 전사들의 시기 였기 때문에-
당연히 주말에(사실상 토요일도 근무했다! 일요일 하루만 쉰다)
집에서 6일을 버티기 위한 충전을 하는게 당연했다.
일만 하고, 회사에 120% 충성하셨던 우리의 아빠들이
맞이하는 퇴직(때때로 그들의 계획만큼 기간을 채우지 못하기도) 이후의
삶을 보며 어른이 된 우리가 아버지가 된 세상에서는 말이다.
IMF, 글로벌 금융 위기가 2차례 있었고,
내 또래들은 중학생 때 한 번, 대학생 때 한 번 크게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자랑스러운 아버지들이 충성한 회사에게 "불명예" 퇴직을 당해버리는
잔인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충성의 댓가가 주는 쓴 잔을.
아빠가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삼성에 들어가 4년 뒤 알았다.
아. 나는 저렇게 할 수 없겠구나.
아무리 삼성이 좋아도, 그들의 일원인게 만족스러워도
절대 남들처럼 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빠만큼의 절실함이 없었는지 업무가 안맞았는지
나는 도저히 "기질적으로" 해낼 수가 없었다.
매일 얼굴에는 화농성 여드름을 달고 살았고,
하루에 두끼만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안되는,
누굴 만나도 불만만 늘어놓는 '무기력한 30대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생애 처음 느끼는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아빠는 다른 계열사의 '전무'가 되어 있었다.
이름 석자 뒤에 붙은 "전무" 이름표가 붙은 점퍼를 입고
의기양양하게 개선장군처럼 현관문을 열고 퇴근하던 날이 기억 난다.
아마 지금의 마음으로 내가 그 날로 돌아가면,
성대한 가족 잔치라도 열었으리라. 마땅히.
멋져 보였던 이유는 '집중'의 댓가라는 깨달음이 있어서다.
평생을 바쳐 일에 집중하고, 온갖 협잡과 소음이 난잡하게 일어도
오직 가족을 위해 사직서를 내지 않고 버틴 사나이의 훈장 같은
그 임원이라는 직함은 내게도 엄청난 자랑이었다.
누군들 안그러겠는가?
아빠의 삶을 존경한다. 그 덕에 우리 집은 가난을 떨쳐냈다.
그리고 나는 4년의 삼성맨의 삶을 뒤로하고, 이직을 선택했다.
아빠에게 원했던 단 한가지를 나는 이루고 싶어서였다.
대부분의 제조, 건설업 등이 그렇듯 내가 다니던 회사도 역시 현업은 공학도 중심으로 돌아갔다.
회사의 스탭 조직도 좋지만, 결국 내 전공(경영학)이
주 업무가 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해야한다는
직장인 4년차의 깨달음을 얻고, 퇴사 후
일년간 푹 쉬고 지금의 회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삼성맨이었던 4년 동안 내가 잃었던 것은 세가지다(유달리 나만 잃었다.)
건 강 : 몸과 마음, 정신이 피폐해져 나중엔 대인기피에 불안장애까지 오더라.
관 계 : 회사 사람들에게는 반감을, 친구들에게는 비공감을 나눌 수 밖에 없었다. 엉망이었다.
가 정 : 아빠는 지방, 누나가 유학 가 있어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10여년 전 직장인이다보니) 워라밸이 좋지 않아 가정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엄마가 혼자 있는 날이 늘어 참 미안했지만.. 나도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 주말에 집에 있으면 방에서 잠만 자거나 불평만 늘어놓는게 부끄러워졌다.
모든 건 개인마다 다른 상황이 문제고,
예민한 내 성향상 안맞는 상황들이 겹친 것 뿐.
결국은 '내 잘못'일텐데,
그럼 내 잘못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그래. 회사를 이직하자.
가족과 나를 지켜낼 수 있도록.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의 직장에서 보다 안정적인 일을 찾게 됐고,
그리고 일 년 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일구게 되었고
사랑하는 딸들을 낳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업무와 회사를 대하는 나의 자세도
한결 여유로워져서, 이제는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날선 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됐다.
그토록 힘들게 이직한 회사에서, 원하던 세가지를 다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초반 몇년은 너무 고생했지만, 가정이 생기니까 달라지더라.
"두번의 실패는 나의 실패다" 라고 독하게 마음먹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이랄까.
그렇게 원하던 세가지를 이제는 다 얻어가고 있다.
건 강 : 1분 단위로 사람을 쪼는 숨막힘이 없다는 것, 건강으로 이어진다. 물론 여기는 이전 직장보다 혼자 감당할 범위는 더 넓지만. 내 일이 회사의 메인 업무니 버틸만하다는 느낌.
관 계 : 업무 중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익혔다. 삼성때 알았으면 굉장히 좋았겠지만, 그때는 나도 너무 어렸고 여렸다. 아무래도 ‘두번째 회사’다보니 이전의 경험들이 큰 보탬이 됐겠지.
가 정 : 첫 아이 출산전까진 여기서도 제일 바쁘고 야근 많은 부서에 있었다. 하지만 첫째가 복이었는지, 바짝 고생한 뒤 부서를 옮기고나서는 9 to 7 정도로 삶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여력이 생겼다.
그렇게 이직한 회사에 다소 힘들었지만
어느정도 일도 손에 익었고, 나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평판을 쌓으며 워라밸을 챙기는데
아무래도 자꾸만 아이를 낳고 시간이 부족하니
가끔 답답한 불안감이 드는건 사실이다
첫 딸이 더 아가였을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한자 더 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섯시 쯤 일어나는 둘째딸과
놀아주고 밥먹이고, 첫째까지 일어나면
두 딸 옷입히고 씻기고 가방싸면 내 출근시간..
특히 큰 아이는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닌 아이라,
요즘 좀 위기감과 아쉬움이 들었다.
나보다 우리 가족의 내일을 위해서
한참 더 많이 공부하고 도전할 때인데
* 그것이 투자든, 자기계발이든
그러다가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줄의 생각,
휴직까지하면서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이제 애가 좀 걷고 혼자 놀기 시작한다고
벌써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과소평가하나
라는 무서운 현실을 마주하니 정신이 퍼뜩 든다
돈 잘 벌고 기회가 많은 회사를
4년이나 다니다 그만둔 이유가 뭔가?
지방에서 수당 받고 더 편할 수 있는 회사를 안 간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인데.
자꾸 좁은 눈을 뜨려하는 삶에 적응하지말자.
지금 두 딸에게는 아빠가 같이 놀아주고
밥먹이고 머리 묶어주는 아침 시간이
제일 소중하다.
아내랑 연애할때 가던 데이트 장소들을
아이와 함께 걸으며, 그때 보고 얘기하던 것들과
지금의 대화가 아주 많이 달라진걸 보면,
천천히 잘해가고 있다는걸 느낀다.
느긋하게 여유부릴 것도 없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를 놓칠만큼 조급해하지는 말자.
다시 돌아가보자.
나는 대학 수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남들 다 누리는 대학 시절의 즐거움?
아마 편입 시험까지 끝나고나서
‘실패’를 받아들인 뒤에 3학년 때 시작됐고
입사 당시 그룹에서도 제일 잘 나가던 계열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삶이 핑크빛으로 다가왔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임원”이라는
그 사실이 나에게 굉장한 플러스 요인임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결국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전무 명찰을 달고 기사가 내려주는 차에서
내리던 그 모습보다도.
토요일에 같이 겜보이하고 놀던 아빠,
엄마가 기도원 갔을때 얼린 돼지고기를 굽다가
후라이팬 다 태워서 나가서 짜장면 사주던 아빠,
그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복사지 이면지를 매일 잔뜩 들고 오던 아빠의 모습이다
20대가 다 지나고 데려가주신
근사한 호텔이나 외국보다도,
캠핑장 계곡에서 같이 줏은 큰 돌에
삼겹살을 구워먹던 그 즐거운 순간들의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다
짧은 순간들
하지만 영원히 가져갈 소중함들
나는 지금,
내 아이들에게 어떤 시간들을 만들어주고 있을까